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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함부로 침 뱉지 마라

김정호 백제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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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3.27 15:49
  • 기자명 By. 충청신문

꽃이 흐드러진 나들이 철이다. 휴일 공원에 사람들이 붐빈다. 퉤퉤, 침을 뱉는 사람 옆을 피해 지나간다. 기분이 상해 나도 뒤에 대고 침을 뱉는다. 에혀~ 깜짝 놀란다. 

야구 중계를 보면 침 뱉는 모습이 눈에 띈다. 자기가 슬라이딩할 그라운드에 침을 뱉는다. 씨름 선수들도 침을 뱉어 손바닥을 비비며 샅바를 쥔다. 농구 선수들도 코트에 침을 뱉고 발로 문지른다. 무의식적인 습관이다. 운동선수라고 해서 침이 많은 것은 아니다.

침, 타액(唾液)은 늘 입안에 고여 있다. 흔하디흔한 대수롭지 않은 분비물로 여겨 별로 신경 안 쓴다. 침의 성분은 99%가 물이다. 건강한 성인은 하루에 약 1.5ℓ를 생산한다고 한다. 침샘은 혈액에서 필요한 성분을 추출하여 침으로 변환하는데, 변환시간은 실시간이다. 침은 음식물이 잘 섞이도록 하고, 위에서의 소화를 도와준다. 침은 기본적으로 무색무취이며 무균상태다. 그러나 분비 직후 구강미생물과 섞이므로 냄새가 난다. 흡연자의 입 냄새는 고약하다. 흡연구역 재떨이는 침 범벅이다.

단전호흡을 하면 입안에 저절로 맑은 침이 고인다. 도가(道家)에서는 그 침을 신수(神水)라고 불러 삼키면 몸에 좋다고 한다.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양생방법으로 침을 삼키라고 한다. “침을 함부로 뱉어내지 말고 수시로 삼키면 얼굴이 밝아지고 오장이 튼튼해진다”고 설명한다.

구강 건조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침의 소중함을 안다. 입술이 마르고 혀가 마르고 입천장이 마르고 목이 마른다. 말을 많이 하면 건조해져서 거품이 생긴다. 게거품 물지 마라. 흥분하면 침이 튄다. 흥분하지 마라.

무언가에 몰두하여 입을 못 다물면 침을 흘린다. 입을 오랫동안 벌리고 있어야 하는 치과에서는 침을 흡입하는 기구를 사용한다. 유아들은 침을 흘린다. 아기 침받이는 귀엽다. 침을 많이 흘리는 아이가 건강하다.

러시아 학자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실험은 재미있다. 개에게 항상 종소리를 들려준 후에 먹이를 주었더니, 나중에 종소리만 들어도 입에서 군침을 흘린다. 고전적 학습이론이지만, 조건반응에 침을 등장시켰다.

참여시인 김수영은 “시여, 침을 뱉어라”는 글을 남겼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노하는가” 자신이라는 작은 존재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데 대해 끊임없이 괴로워했던 시인이 떠오른다. 억압적 독재는 사라졌지만, 침을 뱉고 싶은 군상들이 소멸되지 않고 득세하는 현상이 야속하기마저 하다. 

가난한 사람에게 물으면 돈 많은 것이 바람이라 한다. 돈 많은 사람에게 물으면 건강이 바람이라 한다. 건강한 사람에게 물으면 화목이 바람이라 한다. 화목한 사람에게 물으면 자식이 바람이라 한다. 자식 있는 사람에게 물으면 무자식이 상팔자라 한다. 남에게는 있는데 나에게는 없는 것, 남에게는 없는데 나에게는 있는 것,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것이 인생이다.

맛있는 음식을 보고 먹고 싶을 때 군침이 돈다. 배가 고프면 목구멍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욕심이 생기는 물건 앞에서 군침을 흘린다. 침이 달기도 하고 쓰기도 하다. 내 것이 아닌 것에 공연히 헛침 삼키기도 한다. 

아이들이 과자를 놓고 “내가 침 발랐어. 찜 했어” 한다. 침을 바르는 것은 소유권 선언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 침은 사회적 기능을 갖고 있다. 사람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 타인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상대에게 줄 수 있는 최강의 모욕이다. 

한 사람을 세워놓고 집단으로 침을 뱉는 조리돌림도 연출된다. 침을 뱉는 행위는 아주 더럽고 치사해서 돌아보지도 않고 멸시하는 표시다. 어느 독재자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고 했다. 호기롭고 당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살아 있는 동안 하고 있는 행위가 바르지 못한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참회하지 않고 떠난 자, 침을 뱉을 무덤이 늘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하시지. “누워서 침 뱉기”라는 속담이 있다. 누워서 뱉은 침은 자기 얼굴로 떨어진다. 결국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거다. 

겉으로만 꾸며서 듣기 좋게 하는 침 발린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 주라. 그렇게 침이 마른다면 구강이 건조해도 좋다. 웃자. 웃는 낯에 침 뱉으랴. 

침은 끈적끈적하다.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책장을 넘길 때 손가락에 침을 묻힌다. 돈을 셀 때 손가락에 침을 묻힌다. 비위생적이다. 예전의 할머니들은 음식을 꼭꼭 씹어 침을 잘 섞어 뱉어서 자식에게 먹였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기겁을 한다. 애정과 혐오가 입맞춤을 한다. 

나이가 들어 노화가 진행되면 침의 분비량도 줄어든다. 어르신들은 뱉지 않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젊은이들은 일부러 불량해 보이려고 침을 뱉는다. 틱틱, 찍찍 침을 뱉는 건 습관이 된다.

침은 감기, 독감, 결핵 등의 호흡기 전염병의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기침을 할 때, 휴지로 가리거나 방향을 돌려야 한다. 바닥에 아무 생각 없이 침을 뱉지 마라. 웬만하면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서는 침을 뱉지 않도록 하자. 우리는 너무 자연스럽게 침을 뱉는다. 길이나 공원, 여러 사람이 모이거나 다니는 곳에서 함부로 침을 뱉는 행위는 경범죄처벌법 제1조 17호 위반이다. 

꽃구경 가자. 봄나들이 가자. 온다던 평화의 봄은 왜 이리 더딘가? 인륜과 천륜을 짓이기는 무리들은 어쩌자고 저리 발광을 하는가? 미세먼지가 아우성이다. 침을 삼킬 때 목구멍이 아프다. 그렇다고 아름다운 봄 풍경에 침을 뱉을 수는 없다. 

자기의 침을 처리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삼키든가, 뱉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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