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 60대 중반의 꽃구경
[목요세평] 60대 중반의 꽃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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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2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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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백제문화원장

김정호 백제문화원장

60대 중반 친구들이 모여 꽃구경을 갔다. 부모는 모두 돌아가셨고, 자식들은 모두 커서 떠나갔다. 가정의 달 주말 나들이 행렬은 엄청나게 붐볐다. “마누라가 젤이여. 마누라보다 일찍 가는 게 좋은 겨.” 홀로 남은 친구가 앞장선다.

어버이날 받기 거북한 선물로 꽃, 책, 케이크가 꼽힌다고 한다. 현금이 가장 선호되었다. 전화 한 통화가 최고라고 자식 자랑 하다가 멈칫거린다.

몇 세부터 노인인가? 경로우대증은 만 65세부터 나온다. 그러나 노인이라고 칭하기에는 참 어정쩡하다. 전반전을 마치고 하프타임인가. 후반전인가, 종반전인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전반전은 끝났다. 자의반 타의반, 인생은 되돌릴 수 없다.

사는 게 어려웠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들. “별일 없지? 아픈 데는 없냐?” “그 친구는 풍 맞았대.” 일상적인 인사를 나눈다.

은퇴하면 2세들이 노후를 지탱해 줬다. 당연히 암묵적으로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나를 경제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60대 중반 우리 세대가 맞은 현실이다.

“젊었을 때 잠도 못자고 뼈 빠지게 일했지. 꽃구경 할 틈이 없었어.” 그랬다. 전교 1등, 호롱불, 보자기 책보, 재래식 측간, 우물 바가지 양동이 세숫대야, 가마솥 아궁이 부엌, 개울 빨래터, 고무신, 자전거, 고무줄, 새총, 눈깔사탕, 사글세 단칸방 세대다. 먹고 사는 게 전부였다. 대한민국 60대 중반! 아무나 보고 반말하고, 거리낌 없이 육담을 나누고, 천박함을 친숙함으로 포장한다. 젊은 애들이 버르장머리 없다고 걱정하면서도, 우리가 잘못한 것이 너무 많다고 미안해한다. 자식에게 기댈 것 없다 하면서도, 손자·손녀를 기다린다. “세상 많이 변했어, 세상 많이 좋아 졌어.” 그러면서 주말에는 집에 박혀 있다가 평일에 돌아다니자는, 그래도 착한 세대다. 신세대가 1000원짜리 김밥을 먹고 5000원짜리 커피를 마실 때, 5000원짜리 국밥을 먹고 5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이빨을 쑤시는 구세대다.

전망대에 오른다. 높은 곳에서 보니 바닥에서 보이진 않던 풍경들이 보인다. 꽃 단지를 둘러싸고 있는 숲도 보이고 울타리도 보인다. 형형색색 꽃무리들이 어울려 만든 형상도 보인다.

꽃과 인생은 한통속이다. “꽃가마 타고 꽃길만 걸으소서.” 누가 보냈는지 모르는 신년 인사다. 참 많은 꽃다발도 받았고, 축하 화환도 받았다. 조화도 많이 보냈고, 슬픔도 많았다.

꽃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신혼부부를 본다. 젊음은 무조건 예쁘다. 주변이 환하다. 젊다는 건 얼마나 좋은 것인가!

봄과 여름이 뒤섞였다. 봄이 짧아지고 있다.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한다. 계절은 해마다 반복되지만, 인생은 1회뿐이다. 반복이 없다. 복기도 없다.

꽃은 계절마다 핀다. 봄꽃은 노랗고, 여름꽃은 빨갛고, 가을꽃은 하얗다. 꽃은 색깔과 향기, 자태로 말한다. 내 색깔, 내 향기, 내 자태는 무엇인가. 가시가 장미꽃의 흠은 아니다. 벌레 먹은 꽃잎이 장미꽃의 전부는 아니다.

꽃은 무리지어 핀다. 한 무리가 피고 지면 또 다른 무리가 핀다. 꽃이 진다고 서러워 마라.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허무해 하지 마라. 지지 않는 꽃은 없다.

방방곡곡 많은 잔치가 열린다. 가장 많은 잔치가 꽃잔치다. 매화, 유채꽃, 산수유, 진달래, 철쭉, 벚꽃, 목련, 수선화, 튤립, 이팝꽃, 작약, 장미, 연꽃, 국화 꽃축제가 넘쳐난다. 꽃밭, 꽃동산이 흐드러진다. 아름다운 나라다.

꽃이 예뻐서 텃밭에서 양귀비를 키우는 친구야. 관상용이라지만 불법이다. 매혹적인 것은 때때로 위험하다.

있는 대로 보지 않고 보고 싶은 대로 본다고 핀잔을 준다. “낄끼빠빠”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란다. 10대들의 비속어를, 우리가 쓴다. 어른들은 애들이 싸울 때 한쪽 편을 들지 않는다. 나이가 들으니 안 보이는 것이 는다. 반대로, 안 보이더니 보이는 것도 는다. “꽃보다 할배” 평균연령 76세 배우들의 해외여행기를 재미있게 보았었다. 누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흥얼댄다.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

고 쇠귀 신영복 선생의 서화 달력 5월에는 “누구나 꽃”이 적혀 있다. 누구나 꽃이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을 노래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짧고 강렬한 울림이 온다. 자세히 보아야, 오래 보아야, 너도 그렇다.

꽃 앞에서 인상 쓰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꽃이다. 우리 모두가 꽃이다. “저것 봐. 장미도 여러 종류네.” 담벼락에 꽃이 피니까 그 꽃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보인다. 젊었을 때 보았던 꽃과 나이 들어 보는 꽃은 사뭇 다르다.

60대 중반,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시의 모범인 양 외우고 살아오다가, 백만 송이 장미와 마주쳤다. 그래요, 거리적 거리지 말고 마음 비우고 평일에 끼리끼리 꽃구경 다니십시다. 삶의 전부가 먹고 사는 것, 버르장머리 없는 것만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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