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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직관과 집관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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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10.22 14:03
  • 기자명 By. 충청신문
최근 인터넷상에 유행하는 용어로 ‘직관’이 있다. 사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알아낸다는 의미의 직관(intuition)이 아니고 ‘직접 관람하다’의 줄임말로 스포츠경기나 콘서트를 직접 찾아가서 본다는 뜻이다. 반대로 ‘집에서 관람한다’는 ‘집관’이라 부르면서 나름 운율까지 맞춰가며 즐겨 쓰인다.

직관은 여러모로 품이 많이 든다. 우선 해당 장소까지 직접 내왕해야하는 수고로움은 기본인데다, 이걸 또 날짜와 시간까지 맞춰야 가능한 일이다. 또 일시와 장소를 맞추더라도 관람 자리에 따라 가격이 다른 티켓을 결정해야 한다. 당연히 좋은 자리는 비싸기 마련이니 가격과 관람위치를 가성비라는 명목으로 타협하고 합리화하며 스스로를 설득한다. 어렵사리 입장한 경기장이나 콘서트 장에서도 직관은 도무지 이득인 것 같지 않다. 잠깐 한눈 판 사이에 골이 들어가고 하필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홈런이 터지고 K.O가 일어난다. 집에선 소파에 누워 편하게 TV로 보면 전문가의 해설과 함께 슬로우 모션으로, 그것도 각도를 수차례 바꿔가며 몇 번이나 반복해서 틀어주는데 말이다. 비싸게 티켓 사서 들어간 콘서트 자리에선 좋아하는 가수가 개미만큼 작게 보인다. 그 와중에 얼굴이라도 볼라치면 결국 콘서트장 전광판으로나 봐야 하는데 그 전광판은 집에 있는 TV보다 해상도가 낮다. 가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는 제일 비싼 자리인 무대 바로 앞자리는, 심지어 콘서트 내내 서서 볼 각오를 해야 한다. 앉을 공간이 분명히 있는데도 말이다. 더구나 특정 타이밍엔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한 시간 내내 제자리 뛰기를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콘서트가 끝나고 나면 노래를 부른 건 가수인데 내 목이 쉬어 있기도 하다.

이처럼 직관은 온통 소모적이고 낭비투성이다. 경제적 효용성이나 물리적 효율성은 아예 고려대상이 아니다. 한국시리즈가 열릴 야구장 주변은 교통체증으로 엄청난 차량의 공회전을 유발하며 에너지를 펑펑 써대는데다가, 응원하는 팀이 눈앞에서 패배할 때 터지는 울화통은 집에서 볼 때와는 차원이 다른 폭발력으로 다가온다. 비라도 올라치면 흠뻑 비 맞으며 볼 경기를, 집에선 TV로 편안히 먹으며 관람할 수 있고, 직관하면 경기장 주변에서 매식을 하거나 현장에서 주전부리를 비싼 돈 주고 사 먹어야 하는데 그 돈이면 집에선 몇 배를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왠지 억울하다.

사람들이 직관에 열광하는 이유는 위의 모든 불합리함과 단점이 반대로 공감과 장점으로 상쇄될 때 비로소 설명된다. 좋아하는 경기나 공연을 보기 위해 내 시간과 수고로움을 내어가며 일시와 장소에 맞춰 현장에 가며 기대감을 키운다. 먼발치의 스타 플레이어들과 한 공간에서 숨쉬며 두 눈으로 직접 그들을 보는 현장감은, 예술적 앵글로 제공되는 TV 화면과는 비교도 안 될 짜릿함을 선사한다. 집에서 TV로 보면 전문적인 해설로 객관적인 분석이 일방적으로 부여되지만, 현장에선 스스로 열불내가며 몹시 주관적인 관람평을 내리며 자신만의 생각을 주체적으로 가다듬는다. 거기에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관중들의 군중심리에 따라 나름의 의견을 묻어가노라면 묘한 소속감과 쾌감마저 든다. 그러다보니 집에서 보건 극장에서 보건 관람 내용이 달라지지 않는 영화의 경우에도, 일부러 극장에 가서 사람들과 함께 대화면과 웅장한 사운드를 즐기며 그 공간에 파묻히는 경험을 하러 가는 것이다. 그래서 문화의 경험을 가정으로 가져올 때는 공간감과 현장감을 그대로 구현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적용한다. 현장의 시각과 청각을 구현하기 위해 높은 해상도의 영상으로 현장감을 부여하고 다채널 오디오 장치로 공간감을 실현하려 애쓴다. 이렇게 첨단 기술로 구현된 고가의 하이 테크놀로지 기기들조차 직접관람이 부여하는 요소들의 완벽한 재현이 불가능하기에, 여전히 사람들은 수고로움과 지출을 감내하면서까지 직접 경기장과 공연장을 찾는다.

전기적 음향증폭을 거치지 않은 자연음향만으로 이루어지는 클래식 공연은, 음반과는 비교불가인 현장의 음색과 연주자의 호흡을 느끼기 위해 현장을 직접 찾아 듣는 것이 보편적이다. 눈앞에서 살아 숨 쉬는 연기와 음악이 공존하는 오페라라면 더욱 그렇다. 마침 대전에서 오늘부터 두 개의 걸작 오페라가 대전예술의전당과 시립연정국악원, 불과 400미터 거리를 두고 같이 공연된다. 직관해보자. 오페라를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본 사람은 없을 정도로 그 중독성은 강하니까. 집관보다는 역시 직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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