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운전수라고 부르던 사람에게 언제부터인가 기사아저씨, 기사양반, 기사님을 거쳐서 이제는 기사선생님이라고 높여 부른다. 하루가 다르게 수직상승하는 상대에 대한 호칭 인플레이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호칭의 상승은 언제까지, 어디까지 지속될지 모를 지경이다. 언제까지, 어디까지 지속될지는 몰라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절대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사실이다. 한 번 오른 물가가 하락하는 일이 없듯이 호칭도 한번 높여 부르면 굳이 뒷걸음질을 할 이유가 없다. 더 높일 수 있는 호칭이 생겨날 뿐이다.
이처럼 호칭이 날로 상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추측컨대 국가 전체적으로 교육수준, 의식수준, 생활수준, 문화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모두가 가난하고 못 배워 초라한 행색으로 살아가던 시절에는 눈에 보이는 상대가 높여 대해야할 대상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개선된 교육환경 덕에 국민 모두가 배움의 길을 걷고, 일정 수준 이상의 기본생활을 할 처지가 되었으니 제대로 된 인격체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호칭이 존경과 우대의 의미를 담은 말로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즉, 호칭의 격이 상승했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 전반의 인격이 상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호칭 인플레이션은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사회가 발전하며 삶의 질이 나아지고, 개인의 학식 수준이 올라가고 더불어 품격까지 상승하게 됐다. 누구 한 명도 만만해 보이지 않고, 저마다 인격체로서의 자질을 갖춘 데다 가능성을 가진 인물로 평가되기 시작했으니 자연스럽게 호칭의 격이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다분히 긍정적 요인을 갖고 있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사회가 발전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수업을 맡아 진행해봤고, 대학과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평생학습 시설에서 강의를 해본 경험이 있다. 그랬더니 내게도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아졌다. 난 직업적으로 교수가 아니지만 내가 진행하는 수업을 받은 이들은 듣기 좋으라고 내게 “교수님”이란 호칭을 불러주기 시작했다. 민망하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호칭이다. 진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듣기라도 하면 조롱거리가 될 것 같은 부끄러움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상대가 나를 부르는 호칭을 내가 규정하여 그렇게 부르지 말고 이렇게 부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분에 넘치는 호칭으로 불릴 때는 어색하고 면구스럽다. 그렇지만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으니 나 또한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부를 때 “교수님”이라고 부를 때가 많다. 남들이 다 그렇게 부르는데 나 혼자만 그 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호칭을 사용할 경우 불손하게 비쳐질 수 있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부르긴 부르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다.
이제 “사장님” “사모님” “선생님” “교수님”등의 호칭은 꼭 그러한 신분을 갖지 않은 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불러주는 호칭이 되었다. 나 혼자 어색하다고 피해갈 수 없는 호칭이 되었다. 실제 신분이나 직위보다 한껏 높은 호칭을 상용하는 것은, 부르는 사람에게나, 불리는 사람에게나 나쁠 것은 없다. 다만 실제 직업이 사장이고 교수인 이들이 이런 대화를 들을 때는 다소 거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호칭 인플레이션으로 부를 수 있는 최고치 호칭까지 도달한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떤 호칭이 지금보다 더 높여 부르는 말로 사용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