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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11월은 청국장이 익는 계절

이노신 호서대학교 경영대학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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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11.14 14:23
  • 기자명 By. 장선화 기자
이노신 호서대학교 경영대학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이노신 호서대학교 경영대학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청국장은 사시사철 맛있는 음식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 먹어도 좋겠지만, 유독 찬바람이 불고 날씨가 겨울로 접어드는 11월에는 그 맛이 더욱 좋은 것 같다. 올해로 50의 나이에 접어든 필자도 그동안 세계 여러 나라들을 돌아 다녀 보기도 하고, 미국에서는 8년을 넘게 살아가며 여러 외국 음식들을 경험해 보았다. 하지만 청국장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청국장의 맛은 적어도 한국인인 나에게 본능과도 같다. 타고난 선천적 본능은 아니더라도 어린 시절을 청국장을 즐겨 먹는 한국의 음식 문화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릴 때 습관화 되어 버린 문화적 본능이다. 만일 내가 외국에서 나고 자란 교포이고, 따라서 한국의 음식문화를 한국만큼 접해볼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면, 이토록 11월이 되면 청국장을 찾지는 않을 것 같다.

어렸을 때 나의 몸과 마음 속에 깊이 배어든 청국장의 맛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맛이기도 하다. 서양 속담에 “어머니는 세계 최고의 요리사이다.”라는 말이 있다. 할머니께서, 그리고 어머니께서 흰 두부와 김치를 함께 넣어서 뚝배기에 끓여주신 청국장은 세계 최고의 맛이다. 지금은 연세 드신 어머니께 청국장을 끓여 달라는 말씀을 못 드린다. 끓여도 오히려 내가 끓여서 드려야 한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맛있게 끓여도 어머니의 청국장 맛이 나지 않는 것은 마치 잃어버린 낙원을 다시 찾고자 하는 부질없는 노력과도 같아서 약간은 서글프기도 하다.

필자의 어린 꼬마 시절은 하루 종일 동네를 뛰어 다니며 노는 것이 일과였다. 계절에 따라서 친구들과 숨바꼭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구슬치기, 딱지치기, 개울에서 물고기 잡기, 썰매타기 등 사방이 자연친화적 놀이기구였다. 요즘처럼 롤러 코스터가 있는 놀이공원이나 인공파도가 있는 워터파크 같은 것들이 아니었으나, 내 어릴 적 시냇가의 나무위에 올라가 다이빙하고, 붕어와 피라미, 송사리를 잡으러 다닐 수 있었던 그때가 더 좋았던 것 같다.

11월의 점심은 때때로 이처럼 친구들과 재밌게 노느라고 건너뛰기도 하였다. 물론 추워서 여름처럼 물속에는 들어 갈 수 없지만, 나가서 친구들을 만나면 놀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했다. 할머니께서는 손주에게 밥을 먹이고 싶으셔서 점심때가 되면 동네에서 내 이름을 부르고 다니시기도 하셨다. 그러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며 저녁이 오는 5시쯤 되면, 동네에선 밥 짓는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굴뚝을 통해 지붕 위로 흰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면 청국장 냄새가 콧속으로 스며든다. 이것은 점심때 할머니의 부르심보다 훨씬 더 강력한 부름이었다.

청국장의 맛은 온 몸으로 체득하는 그 맛이다. 11월의 날씨는 차갑고 쌀쌀하지만, 그럴수록 뚝배기 속에서 끓어대는 청국장의 뜨거운 온도는 영혼 깊숙이 스며든다. 그 속에서 새콤하고 적당히 아삭하게 익은 김치와 부드럽고 말랑말랑해진 뜨거운 흰두부를 청국장의 고소한 콩들과 함께 씹으면 무한히 행복하고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먹는 방법도 각자 편한대로 하면 된다. 이처럼 그냥 국물과 함께 숟가락으로 떠먹어도 되고, 밥 한 술 떠서 젓가락으로 그 위에 얹어 먹기도 하고, 아니면 흰 밥에 비벼서 먹기도 한다.

어릴 적의 추억이 깊이 배어버린 청국장은 정감 있는 음식이다. 이것은 때로 병을 치유하는 효과도 있나보다. 수년 전 한 TV 프로에서 암에 걸렸던 의사가 청국장을 꾸준히 먹으면서 결국은 치료가 되었다는 내용이 나오기도 하였다. 특히 그 의사는 암 전문의였는데, 자신이 막상 암에 걸리자 너무도 당혹스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곧이어 치료방법을 찾던 중, 이모께서 끓여 오신 청국장을 먹으며 결국은 나았다고 하였다.(이 내용은 필자의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므로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청국장인지 된장인지 어쨌든 장류였던 것은 확실합니다.) 약식동원, 즉 약과 음식은 원래 같은 것이라고, 이토록 맛있는 음식이 또한 암을 치료할 정도로 귀한 약리 효과마저 있을 수 있다 것이 놀라울 뿐이다. 일본음식인 나또가 발효된 생 청국장에 간장으로 살짝 간을 하여 휘휘 젓가락으로 저어 잘 섞은 뒤 그대로 먹는 것인데, 이것도 어쩌면 약리 효과가 있을 수도 있겠다.

이처럼 청국장은 발효음식이다. 인류가 발견한 가장 위대한 10가지 수퍼 푸드 가운데 발효음식은 가장 최상위권의 하나로 손꼽힌다. 나의 삶 또한 청국장과 함께 발효되는 것 같다. 어릴 적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맛, 친구들과 뛰어 놀았던 동네의 밥 짓는 저녁 풍경들이 청국장과 함께 나의 삶 속에서 더욱 맛있게 발효되어 지는 것 같다. 그런데 참 주책이다. 나이를 먹어 가니 어쩔 수 없나보다. 후반기에 이르러 약이 어떻고, 건강히 어떻고 하는 내용들이 글 속에 절로 실린다. 그렇다 건강이 최고이다. 차가운 겨울 날씨에 사랑이 실린 청국장을 먹고 이기고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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