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세상사는 이야기] TMT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20.01.21 13:59
  • 기자명 By. 충청신문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너무 많이 말하는 사람(Too Much Talker)의 약자다. 수다쟁이라는 의미에 치환하여 쓰인다. 말이 많아도 너무 많음을 뜻하는 이 단어가 요즘 우리의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TV 예능에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엄청난 양의 자막이다.

2000년대 초반 유럽 유학시절에 어렵게 구한 한국예능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혁신이었다. CG로 출연자 머리위에 띄워 놓은 말풍선과 각종 이모티콘은 프로그램의 색깔을 더욱 다채롭게 해줬고, 시청자가 놓치기 쉬운 지점을 상기시키며 프로그램의 의도한 바를 훨씬 효과적으로 끌고 갔다. 리얼리티 쇼를 표방한 프로그램들은 앞 다투어 자막을 활용했고, 이전과는 결이 다른 예능의 지평이 펼쳐지는 듯 했다. 물론 당시 유럽에도 리얼리티쇼가 인기였는데 그네들은 반대로, 자막이 아예 없다시피 했다. 기껏해야 각 회차에 등장인물이 처음 나올 때 이름정도 나오는게 전부였다. 그 흔한 방청객 웃음소리 효과음도 없고, 그저 여러대의 카메라가 다각도에서 인물의 표정만을 꾸준히 읽어낼 뿐이었다. 재미없었다.

적어도 그 당시엔 그랬다.

요즘 한국 TV 예능은 자막의 홍수다. 대사를 띄우는 건 기본에, 경우에 따라선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느껴질 상황도 PD의 편집방향에 맞게 이모티콘이나 문장 부호, 효과음까지 넣어가며 정의해버린다. 재밌다 싶은 부분은 다른 각도의 카메라로 찍은 장면을 여러번 반복해서 보여준다. 제작진이 중요시하는 장면은 수차례 반복되고 강조되며, 그 외 것들은 잘라낸다. 제한된 시간 안에 필요한 정보를 보여주는 것이 편집의 정석이겠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누가 메인 캐릭터이고 서브캐릭터인지. 또 그들이 맡은 역할이 무엇이고 어떤 콘셉트로 구도가 잡히고 미리 짜여진 역할을 강요당하는지.

그래서 리얼리티 예능이나 심지어 리얼리티 쇼에도 시청자가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어 판단을 강요당한다. ‘악마의 편집’ 논란은 그 때문에 일어난다. 과연 출연자가 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싶은 괴랄한 자막들은 그래서 영 불편하다. 보다보면 시청자가 판단할 감정의 몫마저 제작진으로부터 미리 결정당하고 통보당하는 느낌이다.

하긴 생각을 주입하는 것도 모자라 제작자의 판단으로 오디션 경연자를 미리 선정해 문제가 됐다. 과하다 보니 급기야 선까지 넘었다.

공연을 제작할 때 관객에게 다가가기 쉽게 변형하거나 편성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대부분은 아주 기발하고, 다채로우며, 어려울 수 있는 공연을 쉽게 관객에게 전달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들로 넘쳐난다. 한편으론, 선을 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 과하다 보니 왜곡되고 뒤틀리며, 작품진입의 문턱을 낮추겠다며 수준까지 낮추는 경우도 벌어진다. 그 경계를 조절하는 것이 묘미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엔 보기 민망한 경우도 연출된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무엇이든 과하면 부작용도 큰 법. 이 말의 원뜻은 지나치면 부족해지기 마련이란다. 많이 던져줘도 되려 남는 게 없는 경우다.

최근에 화제가 된 영화가 있다. 명장으로 불리는 70대노장 감독이 70대 명배우 3명을 주인공으로 삼아 미국의 근대사를 조명한 영화다. CG 효과로 배우들을 어리게 보이는 디에이징(De-aging) 기법을 써서 30대부터 80대까지 그려냈지만, 얼굴은 30대인데 동작은 70대가 고스란히 노출되는 안타까움도 군데군데 보인다.

하지만 노장은 한없이 빛났다.

감독이 이야기해낸 이 영화에는 인물과 사건에 대한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는다. 또 감정을 그려내는 웅장한 음악이나 조명. 현란한 카메라 워크도 없다. 배우들이 연기해내는 시간의 유장함을 느낄뿐이다. 영화의 정점에서 현대사의 미스테리로 불리는 지미호파의 최후의 순간마저 빠른 카메라 교차 편집이 아닌 풀샷으로 담담히 담아낸다. 일체의 판단을 관객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갱스터의 일대기를 다루지만 엄청난 액션도, 과도한 피 흩뿌림도 없다. 시간의 흐름 속에 인물들이 그저 사그라져 가지만, 그로 인해 인물들이 고스란히 가슴에 남는다.

영화가 끝난 후에 먹먹함은 이 무지막지하게 긴 영화를 몇 번이나 재 관람을 하게했고 그때마다 이전 회차에서 읽어내지 못한 인물의 감정선과 이야기를 다시 발견했다. 간만에 여운이 긴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관객 스스로 판단할 여지를 남겨주는 감독의 의중이 너무나 반갑다.

과하면 잊히고, 비우면 남는다.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