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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시경(詩經) 읽기와 항일민족시인 이육사의 시 ‘광야’

이노신 호서대학교 경영대학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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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3.11 14:41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노신 호서대학교 경영대학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이노신 호서대학교 경영대학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시경(詩經)은 유교 사상의 경전인 사서삼경(四書三經) 중 하나이며, 시경은 서경(書經), 역경(易經 또는 周易)과 함께 삼경에 속한다. 사서삼경에서 경(經)은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孔子, BC 551-479)가 생존 당시 직접 편찬했기 때문에, 서(書)보다 격을 더 높이 쳐왔다. 이것은 그만큼 시경이 차지하는 위상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시경을 편찬한 이는 공자이다. 공자는 주(周)나라 초기부터 춘추시대 중기까지의 시가 3000여 편 가운데 311편을 엄선하여 시경으로 편집하였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흐른 뒤 한나라 무제(漢武帝, BC 157-87)에 이르러 유교 사상은 중국의 국교가 되었다. 그때부터 시경은 동아시아 국가들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동아시아 문인들의 문학작품 집필에 있어서 기본 교과서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시경은 각국의 문학 형식과 소재와 주제를 담는 내용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한국과 중국, 일본, 베트남은 오랫동안 시경의 영향권에 있었다. 따라서 시경이 동아시아 전통문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클 수밖에 없었다.

시경에 ‘기린의 발자국’이란 시 한 편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린의 발자국이네 / 기다리던 님이 오시나보다 / 아아! 기린이로다 / 기린의 이마가 보인다 / 듬직한 님들이 오신다 / 아아! 기린이로다 / 기린의 뿔이 보인다 / 님의 가족이 오신다 / 아아! 기린이로다 (출처: 이기동의 『시경강설』)

이 시에서 묘사된 기린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목이 긴 아프리카산 기린이 아니다. 이 시 속의 기린은 서방에 사는 상상 속의 동물로 용의 머리와 사슴 몸통, 소의 꼬리와 말의 발굽을 가졌으며, 전체적으로는 말의 모습과도 유사한 상서로운 동물이다. 특히 이 시는 은나라 주왕의 폭정으로 시달리는 백성들을 구하러 서쪽에서 일어난 주나라의 무왕이 군사들을 이끌고 동쪽의 은나라를 정복하러 오는 내용을 묘사한 것이다. 기린은 바로 백성을 압제로부터 해방하는 주체인 주나라 왕족 일가를 지칭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애국 시인인 이육사의 시 ‘광야’는 매우 널리 알려져 있다. 전통적 유학자의 집안에서 태어난 이육사는 어릴 때부터 선친으로부터 유학을 학습하였다. 따라서 시인은 시경의 내용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혔을 것이다.

이육사의 시 ‘광야’또한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윤동주, 이상화와 함께 민족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이육사의 대표적 시인 ‘광야’의 결말부는 “다시 천고의 뒤에 /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로 끝나고 있다.

여기서 천고라는 것은 태고, 즉, 아주 오래전을 의미하니 약 3천 년 전 시경에 묘사된 백성 해방을 위해 주나라의 기린이 나타났던 때이다. 그 이후로 다시 한번, 상상 속의 동물인 기린과도 닮은 백마를 타고 오는 민족의 해방자가 나타나 일제의 탄압에서 우리 민족을 해방시켜 주기를 고대하는 의미이다.
이육사뿐만이 아니다. 일제강점기의 시인들은 시경의 내용을 서양 시의 형식에 접목하여 민족의 해방을 염원하는 시들을 창작하기도 하였다. 윤동주의 ‘서시’나 김춘수의 ‘꽃’, 유치환의 ‘깃발’과 같은 현대시에서도 시경과 유교 사상의 영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시경이 중국, 일본, 베트남을 비롯하여 우리 민족의 전통적 정서를 형성하는데 크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시경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데 중요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대한민국은 아시아의 문화와 서구문화가 혼재하고 융합하는 과정을 계속 경험하고 있다. 떡볶이에 파스타 소스를 버무리고 그 위에 모차렐라 치즈를 뿌려 먹기도 한다. 서양산 비트와 콜라비, 순무를 가지고 고춧가루와 양념을 듬뿍 버무려 깍두기나 물김치를 만든다. 그것의 뿌리와 기원은 어쩌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것들을 버무리고 융합하여 독특한 우리 고유의 문화로 제대로 재탄생시키면 그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중국적 요소이든, 일본적 요소이든, 서양의 것이든 고춧가루와 파, 생강, 마늘이 듬뿍 들어간 양념으로 팍팍 버무려 제대로 된 우리의 맛을 낼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우리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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