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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서자

이종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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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12.15 14:20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종구 수필가
이종구 수필가

내 아들은 유도를 배우고 있다 / 이태 동안 넘어지는 것만 배웠다고 했다 / 낙법만 배웠다고 했다 / 넘어지는 것을 배우다니! / 네가 넘어지는 것을 배우는 이태 동안 /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살았다 / 한 번 넘어지면 그뿐 일어설 수 없다고 / 세상이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 잠들어도 눕지 못했다 / 나는 서서 자는 말 / 아들아 아들아 부끄럽구나 / 흐르는 물은 벼랑에서도 뛰어내린다 / 밤마다 꿈을 꾸지만 / 애비는 서서 자는 말 (정진규 ‘서서 자는 말’)

말은 서서 잔다고 한다. 정진규 시인은 그 말을 보면서 ‘쓰러지면 안 되는, 어떻게 해서든 기를 쓰며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삶’을 비유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아들은 이 년여 세월을 다치지 않고 넘어지는 것만 배웠다니 아버지 입장에서 자신의 무지함을 자책하고 있다.

covid19로 주저앉은 삶을 이어온 지도 어언 2년여 세월이 간다. 지난해 12월엔 ‘설마 내년에는 괜찮겠지’, ‘백신도 개발됐다는데… ’하며 희망을 가졌고, 올봄부터는 백신 예방 접종하면서 생활이 회복될 줄 알았다.

그런데 끊이지 않는 covid19의 기세와 새로운 변종의 출현과 맞물려 부동산 문제가 우리를 엄습했고, ‘대장동’이라는 토지개발 사업의 비리가 더더욱 우리를 낙담하게 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며 살아온 어머니 아버지들은 이제 넘어질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몇 달씩 밀린 임대료는 나라에서 주는 ‘코로나 소상공인 지원금’으로는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었다. 그나마 지원금을 받은 사람은 그렇다 치고 각종 증빙과 자격요건에 맞지 않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원성도 높다. 더더군다나 ‘전 국민 재난지원금’ 또한 받은 사람과 못 받은 사람, 받은 지역과 못 받은 지역 등 갈등의 골이 생기기도 했다. 우스갯소리로 00도로, 00시로 이사하여야겠다는 말도 나왔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어려움을 이겨내는 민족의 저력과 삶의 끈기와 인내가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는 장롱 깊숙이 넣어 두었던 아들·딸의 돌 반지, 결혼반지 등 금을 모으며 힘을 모아 불과 2, 3년여 만에 극복하여 온 세상을 놀라게 했다. 2002년에는 월드컵 대회까지 개최하며 월드컵 개최 중에는 뜨거운 도로 위에 앉아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의 열기를 높였었다.

2007년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건 때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유치원 어린이들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태안 바닷가로 달려가 기름 묻은 바닷가 조약돌을 닦기도 했다. 이런 국민의 단결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은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라고 당시 외신들은 전하고 있었다.

일찍이 외적의 침입에 맞서 삶을 지켜온 우리 민족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래서 일반 백성(국민)을 민초(民草 : ‘백성’을 질긴 생명력을 가진 잡초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라고 한다. 밟혀도, 잘려도, 깎여도, 가뭄에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다시 움트고 일어서는 잡초의 모습에 비유했다. 우리는 그렇게 일어서 왔다.

우리 부모들은 그래서 ‘서서 자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많은 시련을 극복하면서 우리들의 몸과 마음에 터득되고 쌓인 삶의 경험이 있다. 바로 아들이 이태 동안 넘어지는 것을 배움과 같은 시련을 극복해 가는 과정과 자세이다.

이제 곧 2022년, 임인(壬寅)년이다. 임(壬)은 천간에서 흑(黑)이다. 인(寅)은 호랑이를 뜻하니 검은 호랑이해다. 호랑이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대표적 동물이고(88서울올림픽 호돌이), 왕실의 권위를 상징했다. 호랑이해를 맞으면서 다시 일어서는 대한민국이 되길 바라본다. 1908년 11월, 최남선이 『소년』지 창간호에 실은 ‘만주 벌판을 바라보며 포효하는 호랑이 모습의 한반도’처럼 COVID19를 이기고 한 걸음 더 올라서고 힘차게 일어서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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