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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설을 기다리며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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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1.25 15:1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구석구석 먼지를 털어내며 집안 대청소를 시작했다. 주방의 냄비며 그릇들을 모두 꺼내 반질반질 윤을 내고 가스렌지의 기름때도 말끔히 제거했다. 베란다에서 거실로 들어와 겨우내 동거를 시작한 화초들의 잎을 수건으로 일일이 닦아주고 그동안 글 쓴답시고 참고삼아 여기저기 늘어놓았던 책들을 다시 책장 안으로 가지런히 들어 앉혔다.

며칠 후면 도래할 설을 기다리며 미리미리 한두 가지씩 준비하는 중이다. 대청소를 마무리했으니 이제 명절에 쓸 양념으로 참깨를 볶아놓고 간단하게 물김치도 담근다. 지난해와 별반 다를 바 없이 코로나의 굴레를 벗지 못한 채 맞이한 새해 설이지만 근처에 시어른들이 살고 계시니 차례는 지내지 않더라도 집으로 모셔와 간단하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할 요량이다.

종갓집 맏며느리로 평생을 살아오신 친정엄마도 설이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바빠지셨다. 집안 대청소를 시작으로 맷돌에 콩을 갈아 직접 손두부를 하고 사랑방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펴 엿을 고았다. 찹쌀과 엿질금으로 식혜를 만들고 대목장에는 손수 농사지은 옥수수와 쌀을 들고 나가 뻥튀기를 만들어 머리에 이고 대문을 들어서곤 하셨다.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대로 집 안팎을 두루 살피셨다. 마당의 불필요한 물건들을 치우며 정갈히 청소하시고 녹이 슨 초록 대문을 닦고 문설주를 곧추세웠다. 그 많던 식구들이 성장해 하나둘씩 집을 빠져나가고 대문 열 일이 자주 없어져 열 때마다 삐걱거리던 쇳소리를 잡느라 이리저리 바삐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오빠와 남동생을 앞세워 이발소와 목욕탕 다녀오는 일을 빼놓지 않으셨다.

한 해 농사가 모두 끝나고 휴면기에 접어드는 시골의 겨울은 참으로 길고 깊었다. 그 긴긴 시간의 중심 즈음에 맞이하는 설은 그야말로 반가운 축제이고 생활의 활기였다. 집 집마다 북적북적 멀리 떨어져 각자의 삶에 묻혀 있다가 모처럼 일가친척들이 모여 한솥밥을 먹고 얘기꽃을 피우면 한겨울 긴 밤이 찰나처럼 지나갔다. 이웃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고 덕담을 주고받는 따뜻한 시간으로 채우는 한 해 첫 시작을 알리는 설날이었다.

종갓집이었으며 유난히 친척이 많았던 탓에 설 전날이면 한껏 명절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집 안 가득 기름 냄새가 반지르르하고 창고 구석에서 잠만 자던 밥상이 모처럼 얼굴을 내밀어 제 몫을 톡톡히 했다. 빈방으로 남겨두었던 건넌방 아궁이에 장작불이 들어가고 왁자한 식구들 수다와 더불어 굴뚝엔 하얀 연기가 피어올라 금세 온기가 가득한 명절 전야가 펼쳐졌다. 온 식구가 둘러앉아 만두를 빚고 저녁상이 차려지면 그야말로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가득했던 솥단지가 금세 바닥을 보였다.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나면 그때부터는 쉴 새 없이 손님들이 밀려들었다. 바로 옆집 아저씨부터 이웃 마을의 조그마한 어린 꼬마 손님까지 집안의 가장 어르신인 할머니께 세배를 올리겠다며 찾아왔다. 더불어 초록색 낡은 대문도 바빠졌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세배객들 때문에 아버지는 아예 온종일 대문을 활짝 열어놓기도 하셨다. 집 집마다 어르신을 찾아뵈며 새해 인사를 드리고 아이들은 세뱃돈을 받아쥐고 더없이 신이 났다. 주는 이도 받는 이도 모두 그날만큼은 더없이 좋았던 날들이 꿈처럼 아득하다.

명절 며칠 전부터 자식들을 기다리며 이리저리 손이 바빴던 부모님의 마음처럼 온기만은 잃지 않는 넉넉한 설을 기다린다. 코로나로 인해 많이 달라진 명절, 고향 방문은 물론 가족·친지와의 만남이나 모임도 자제해 달라는 방역 당국의 권고에 함께 할 수는 없어도 일인 일 핸드폰 시대 아닌가. 영상통화나 SNS를 잘 활용해 보리라. 형식에 그치는 짧은 말이 아닌 마음을 담아 진심을 아우르는 새해 인사말을 준비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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