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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디지털 박제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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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3.22 14:45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SNS의 순기능과 역기능은 너무 극명하게 갈린다. 일상을 일기 쓰듯 올려놓으면 수년이 지나서 어떤 순간을 상기시켜주기도 하고, 발자취를 돌아볼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기억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를 소환하기도 한다.

디지털 원죄라는 개념이 있다. 사회학자와 미래학자들이 제기한 문제인데, 우리 아이들은 본인의 의사결정권 없이 부모의 의지만으로 신상이 SNS에 공개된다는 문제의식이다. 신생아 탄생의 순간부터 100일/돌 스튜디오 사진. 심지어는 세상에 나오기 전, 자궁 속 초음파 사진부터 아이는 만나본 적 없는 부모의 지인들과 그걸 지켜보는 모든 이들에게 성장 과정이 공개되는 셈이다.

사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들은 감격과 기쁨을 모두와 나누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휩싸인다.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래왔고, 축하와 기념의 순간마다 사진을 남긴다. 다만 커가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가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데도 부모가 사진을 강요하는 순간도 분명히 찾아온다. 바로 이때 문제의식이 발현한다. 당사자가 싫어하는 사진을 왜 공유해야 하는가. 게다가 자신의 친구도 아닌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필자도 청소년 자녀에게 핀잔을 들었다. 아빠 눈엔 좋을지 모르지만, 본인은 부끄럽단다.

전 세계 음원들이 모여있는 유튜브에 들어가면 온갖 희귀 음원들과 함께 각종 연주회 실수 모음들도 있다. 연주자가 무대에서 등 퇴장 때 실수를 한다든지, 표정이 이상하다든지 정도는 양반에 속한다. 프로연주자로서 수치스러운 굴욕의 순간을 담은 영상도 있고, 심지어는 고음을 내다가 소리가 뒤집히는 부분만 모아놓은 영상도 있다. 대개는 공개된 음원과 영상에서 발췌한 편집본이지만, 개중에는 직접 찍은 영상들도 있다.

꽤나 회자되는, 객석에서 핸드폰으로 찍은 동영상이 있다. 한 연주자가 나와서 오페라 테너 아리아를 불렀는데 마지막 고음부분이 인상적인,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곡이다. 그러나 동영상 속 가수는 마지막 고음이 처절하게 뒤집히면서 실패한다. 당황한 연주자는 다시 하겠다며 약속에도 없는 즉석 멘트를 하고 그 부분만 다시 부르지만, 더 통제가 안 되는 고음실패를 겪는다. 이를 찍는 화면이 흔들리고,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며 영상은 마무리된다. 당사자도 알 만큼 조회 수가 높은 영상이다. 본인이 원할 리가 없지만, 아마도 그 굴욕의 순간은 그 사이트가 폐쇄되기 전까지는 계속 박제될 것이다.

대부분의 공연장은 허락된 촬영과 녹화 외에는 금지한다. 공연 중간에 핸드폰을 집어 들면 여지없이 공연장 안내요원이 다가와 꺼 줄 것을 당부한다. 현장감을 즐기며 감상하기 위해 온 관객들 사이로 눈치 없이 폰을 꺼내 찍거나, 어두운 객석에서 폰을 환하게 들여다보면 정말로 몰지각한 일이다. 공연 중 옆에서 누가 폰을 들어 그 화면이 내 시야에 걸리면 그것만큼 화나는 일도 없다. 더 기가 찰 일은 그렇게 채록한 영상을 맘대로 SNS나 유튜브 계정에 올려버리는 일이다. 명백한 불법이다.

간혹, 전공생들이 자신의 연주 영상을 스스로 올리는 예도 있다. 약속된 연주회장 영상을 공유하는 것을 누가 말리겠느냐만, 촬영이 금지된 곳에서 스마트폰으로 거칠게 찍은 영상은 문제다. 이걸 지켜보는 사람들에겐 당사자가 올렸으니 나도 저렇게 찍어서 올려도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충분하다. 제발 말리고 싶다. 자신이 자랑하고픈 그 순간도 꽤 높은 확률로 훗날엔 부족함을 느껴 스스로 내리게 된다. 여기서 ‘꽤 높은 확률’이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

그러니 혹 영상을 올리고 싶다면 연주자 본인에게 제발 물어보자. 웨딩사진 촬영 후 사진선택을 괜히 하는 게 아니다. 화장하고 조명 써가며 각 잡고 찍어도 맘에 드는 사진 고르기가 힘들지 않던가. 남 보기엔 좋아도 내가 맘에 들지 않으면 그만이니.

하물며 연주자도 해당 연주의 모든 부분이 만족스럽지 않을 텐데 굳이 그걸 찍어서 올리는 심사가 궁금하다. 단언컨대 동의 없는 촬영을 가장 원하지 않는 게 연주자 자신이다. 그리고 좋든 싫든 그렇게 그 순간은 기록으로 박제된다.

무명의 아이돌그룹이 관객의 직캠을 통해 인지도를 얻어 스타가 된 일이 있다. 매우 드문 사례다. 대부분의 경우 당사자가 모르는 상태의 촬영과 업로드는 원하지 않을뿐더러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학생 졸업연주나 정기 공연 때는 친지들이 더 한다. 조용한 객석에 자녀와 친구를 찍는 녹화 시작음이 장내에 연달아 울려 퍼진다. 제발 찍어도 된다고 할 때만 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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