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문화속으로] 외줄타기

이혜숙 수필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22.05.02 17:2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시간이 많다 보니 지난날을 반추하는 시간이 많아진 것 같다. 사람들은 여행도 간다는데 우린 언감생심이다. 집안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생각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시골아이들이 먼 거리를 걸어 등교하는 모습을 티브이에서 보았다. 힘들게 등교하면서도 희망을 품은 그들을 모습이 대견해 보인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초등학교 가는 길은 모랫길을 지나 강을 건너야 하는 조금은 힘든 길이었다. 여름에는 신발을 손에 들고 첨벙거리며 지났다. 장난도 치고 모래 속에 숨어있는 물고기를 잡으려 손가락을 모으기도 했다. 한번은 큰물이 진 적이 있다. 다리를 건너는데 물이 흘러가는 게 아니라 다리가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어지러워서 건널 수가 없어 그냥 자리에 주저앉아 눈을 감았다. 한참을 그러고 앉아 있은 후에 먼 곳을 응시하면서 조심조심 다리를 건너던 기억이 새롭다. 외줄 타기같이 위태로운 등하굣길이었던 것 같다. 나이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더니 고생스러웠던 그 시절도 그립다.

가을이 되면 어른들이 나와서 통나무 두 개를 엮어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추워지는 날씨에 강을 건너는 아이들을 위해서다. 살얼음이 낄 때면 미끄러워 조심조심 건너던 통나무다리. 잘못 한눈이라도 팔면 얼음물 속으로 빠지기 일쑤다.

어느 눈 내리는 겨울 하굣길, 눈이 온 뒤라 살얼음 낀 다리가 미끄러워 물에 빠졌다. 그때는 왜 그렇게 추웠던지 바지가 꽁꽁 얼어 달그락 소리를 냈다. 물에 빠지고 눈 속에 빠져 덜덜 떨리고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내 귀까지 들렸다. 그냥 빨리 집에 오면 될 것을 왜 징징 울면서 집에 왔는지. 아버지께서 꽁꽁 언 나를 안아주시면서 바로 뜨거운 아랫목에 발을 넣으면 동상 걸린다고 한참을 마사지해 주신 후에 이불 속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유별스런 아버지 사랑에 응석받이였던 나. 지난날을 생각하다 보니 아버지가 몹시 보고 싶어진다.

티브이에서 외줄타기 하는 방송을 보게 되었다. 고수들은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니며 자유자재로 외줄을 탄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답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은 아닐 텐데 한길을 걸어온 그분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엉덩이에 굳은살이 박였을 것이고 떨어지고 일어나길 반복하면서 수없이 다쳤을 것이다. 노련함 뒤에 숨겨진 그들의 노력이 상상이 간다.

우리 삶도 외줄타기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찔한 순간도 있었고, 좌절해서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한순간의 방심이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떨어져서 그냥 주저앉아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희망이 저 멀리 떠났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실망감으로 무기력해지면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운전하고 가다가 이대로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멍해진 머리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 순간 딸의 얼굴이 앞 유리창에 떠올랐다. 일순간에 잘못을 저지른다면 딸은 가슴속엔 멍에를 안고 살아갈 것 같았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정신을 차리고 나서 긴 한숨을 몰아쉬었다. 지금 생각하니 아슬아슬한 삶의 한순간 같다.

이런저런 이유로 세상과 단절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한다. 잘났다는 사람도 못났다는 사람도 삶에서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기도 하고 오죽하면 그럴까 이해되기도 한다. 그들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줄타기에서 떨어진 채 다시 일어날 원동력이 소멸된 것일까.

손녀 양육을 하다 보니 다시 아찔아찔한 순간이 참 많다. 내가 자식을 키울 땐 몰랐는데 요즘 아기들은 발육상태도 빨라서인지 잠시 잠깐만 눈을 돌려도 다치기 일보 직전이다. 외줄 위에서 비틀거리며 서 있는 것 같다.

50대 중반에 인생을 재정비한다고 그간 찍었던 사진을 태웠다. 반평생을 살았으니 덤으로 사는 삶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덤으로 사는 인생에 무슨 욕심을 가질 것인가. 손을 펴고 살자고 생각했다.

그 후 10년이 더 지났건만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삶의 질을 높인다는 핑계로 아직도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여유롭고 아름답고 넉넉하게 살자고 했던 마음은 어디 가고 동동거리며 헤매는 것일까.

매일 자기 전 하루를 반성하고 참회하며 바르게 실수 없이 살아야지 하는데 아침이 되면 또 잊어버린다. 수없이 반복하며 노력해도 비틀거리는 것은 여전히 숙련되지 못해서일 게다.

삶에서 가장 힘든 것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줄인 것 같다. 너무 느슨하면 거리감이 떨어져 데면데면하게 되고 너무 팽팽하면 튕겨 나간다. 적당함을 지속해야 하는데 잘 안 된다. 많이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도 참 어렵다.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일 것 같다.

나이 들면 모든 것에 양보하고 여유롭게 다음을 준비해야 하는데 고수도 아니면서 고수인 척 아직도 움켜쥐고 있다. 줄타기는 이제 그만.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은 버리고 살아내느라 수고한 나에게 진정한 쉼을 주어야겠다.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