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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선(線)

이종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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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6.22 16:1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종구 수필가

몇 년 전 남해군의 다랭이 마을에 간 적이 있었다. 산자락의 다랭이 논을 보면서 그 아름다움에 빠져든 기억이 생생하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다기보다는 자연적인 멋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 논들은 그 둑이 구불구불 했다. 논뿐이 아니라 밭둑도 그랬다. 땅 모양 그대로 논과 밭을 일구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70년대 새마을 사업과 더불어 ‘경지정리’라 하여 위·아래 층을 없애고 평평하게 만들며 논둑도 직선으로 바로 잡았다. 물대기와 트랙터 등 농기계를 사용하기 편리함 등 관리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모내기가 끝난 호남평야와 같이 너른 들판의 바둑판 같은 논들의 모습은 그 나름대로 멋이 있어 보였다.

선(線‘)은 곡선과 직선으로 나뉜다. ’곡선은 자연이고 직선은 인공’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자연적으로 생긴 도로는 땅모양에 따라 구부러진 곳이 많다. 파인 곳을 메우고, 산자락을 깎고, 다리를 놓고 터널을 뚫어 만든 도로는 직선이다. 옛날 시골의 초가삼간의 서까래는 구부러진 모습이 곧잘 눈에 띄었지만 요즘 짓는 한옥은 제재소에서 나온 직선의 나무이다.

어릴 때, 곡선, 폐곡선, 개곡선, 직선, 반직선 등 용어도 생소한 말들과 원과 타원, 삼각형, 사각형 모서리의 날카로움을 비교하며 용어를 이해하느라 진땀을 뺀 적이 있었다. 곡선은 부드러움과 친근미를 느끼는 정감을 주고, 직선은 각이 잡혀 딱딱하고 날카로와 정감보다는 긴장감을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직선은 날카롭고 딱딱한 느낌을 주지만 생동감이 있고 힘이 있어 보인다. 대표적으로 해병들의 걸음걸이와 자세가 그렇다.

다랭이 논을 만들 때도 주변의 돌덩이를 쌓아 만들었기에 구불거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즘 다랭이 논을 만든다면 아마도 거푸집을 짜놓고 시멘트 몰탈을 부어 공사를 하여 직선화되는 득을 만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곡선은 더디고, 느리고 생긴대로의 미학이고 직선은 빠름이며 대량화이기도 하다. 터널이나 다리를 놓아 횡단하는 도로를 만들고, 공장에서는 규격화된 틀에서 같은 모양의 물건을 찍어내며 쌓아 놓기에 좋게 한다. 둥그런 것은 쌓기 어렵지만 네모진 것은 쌓기 쉽다. 그래서 요즘은 집도 아파트이다.

직선이 나쁘고 곡선이 좋다는 단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획일화되고 정서를 풍부하게 해 주지 못하는 부분을 살펴보자는 말이다. 어렸을 때 해병대를 간 동네 형이 휴가 때 와서 해병대 식사법을 보여주어 웃음을 자아낸 일이 있었다. 밥을 떠서 직각으로 숟가락을 움직여 먹는 모습에 온 마음 사람들이 박장 대소를 했었다. 아마도 그렇게 먹는 일부터 각을 세움으로써 질서와 강인함을 몸에 배게 하여 무적 강군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삶에서도 그렇다. ‘나는 자연0이다’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앞만 보고 쉴 새 없이 달려왔다’, ‘여유도 없이 살다 보니...’, ‘그저 일에 매달리다 보니’라는 말을 한다. 그런 직선적인 삶의 결과 건강을 해치게 됐고, 그래서 산에 들어와 자연과 더불어 여유 있는 삶을 살면서 새로운 행복감을 느끼게 됐고 건강도 회복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좀 쉬면서, 좀 여유를 가지면서, 좀 돌아보고 둘러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으리라라는 생각을 해본다. 직선적이고 급한 것 보다 곡선적이고 여유를 갖는 삶이 때로는 정신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거다.

6월이 되면 ‘선’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른다. 일본에게 나라를 되찾으며 기뻐하기도 전에 그어진 북위 38°선, 그 직선이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이어진 3년여 전쟁 후 다시 휴전선이라는 선으로 바뀌어 어언 70여년이다. 우리의 의사와는 전혀 다르게 외세에 의해 그어진 경계선 아닌 경계선이 되어버린 선. 우리 민족의 아픔이 되어버린 이 선이 하루 빨리 사라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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