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문화속으로] 옥수수 번개팅

강희진 음성예총 회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22.07.11 16:31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강희진 음성예총 회장

문학회 단톡방에 번개팅을 한다고 모임회장이 글을 올렸다. 이맘때 한 번씩 있는 일이라 일정을 비웠다. 30년이 되어 가는 문학회 소모임이다. 모임 초대 회장님을 맡았던 그분은 우리가 함께한 오랜 세월 동안 여름이면 옥수수를 쪄놓고 기다리신다.

처음 만난 것이 1994년 백일장에서였다. 그분은 장원을 했고 난 참방을 했다. 시상식에 갔더니 초록 치마에 분홍저고리 한복을 입고 계셨는데 혼자만 한복을 입으셨기에 눈에 띄었다. 장원을 하셨기 때문인지 당당해 보이고 당선 소감도 너무 잘하셨기에 그 시상식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지금도 가끔 그 한복 이야기를 하는데 시상식에 입고 갈 옷이 없어 다니던 절 합창단 단복을 입은 것이라 했다. 그때는 변변한 옷 하나가 없었다며 웃는다. 우연이 백일장에 참가해서 만났다가 이제는 필연이 되어버린 사람이다. 큰언니랑 동갑이라는 그 친숙함이 더해져 친정 언니처럼 지내왔다.

봄이면 갖가지 나물밥을 해 놓고 불러주시고 나물 맛의 여운이 사라질 때쯤 산딸기를 먹으러 오라고 전화를 하신다. 초여름이 되면 감자를 그리고 오늘처럼 옥수수를 먹으러 오라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비닐하우스에서 나오는 상추며 고추는 마치 내가 심어 놓은 양 들락거리며 따다 먹고 있다. 가을이면 농사지은 곡식과 쌀도 주시고, 겨울이면 김장김치까지 나눠 주시니 남남끼리 만나 이렇게 정을 나누면서 살고 있다. 이 인연이 고맙다.

어디 그뿐인가 언제든 밥 먹으러 간다고 하면 뚝딱 밥상을 차려주시고 심란한 일이나 누구 뒷담화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 찾아가서 실컷 토해내고 와도 뒤탈이 없다.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금방 친해져서 둘도 없이 지내다가 사소한 오해로 데면데면 해 지기도 하고, 친해지고 싶어 오래 공들여도 늘 그 거리인 사람도 있다. 또 변함없이 수십 년을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는 친구도 있고, 언니처럼 친정엄마처럼 따뜻한 인연도 있다. 사람의 인연을 여기서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나와 이분의 인연은 주위에서도 특별하게 보고 부러워한다.

회원 한 분이 이번 번개모임은 함께 하지 못한다며 초대 회장님의 집 승강기를 타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는 글을 올렸다. 허리와 다리가 아파 이 층을 오르내리는 것이 불편하여 자식들이 승강기를 놓아주신 것이다. 초록 치마에 분홍저고리를 입고 웃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허리는 굽고 걷는 것도 불편해져 버렸으니 서글픈 일이다. 또한 어느 해든가 이층옥상에서 옥수수도 먹고 별을 보며 하룻밤을 보내자며 텐트도 치고 멍석도 깔았다. 한밤중이 되자 어떤 회원은 엄마를 찾는 아이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고. 또 다른 회원은 남편의 전화로 그 자리를 떠나고 10여 명의 젊은 회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집으로 돌아갔다. 마지막 남은 세 분은 50대만 남았더란다. 그 젊은 회원들이 50대 중반이고 세분은 70대 80대를 살아가고 있다. 오늘 밤 우리는 또 이 이야기를 할 것 같다. 이럴 때 인생무상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아닐까.

쓸쓸한 마음에 창밖을 내다보니 여름의 상징이 되어버린 금계국이 막바지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고 엊그제 심은 것 같은 벼도 땅의 기운을 받고 진초록 초원을 펼치고 있다. 오늘 우리는 하하 호호하면서 즐거운 추억을 또 쌓을 것이다. 시간은 이렇게 소리 없이 또 가고 있다. 언젠가는 내 후배들도 나를 기억하겠지. 그런데 포근하지도 넉넉한 인품을 가지지도 못했으니 어쩌랴.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