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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또 다른 경험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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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8.01 17:0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꽃 잔치를 벌이던 봄이 지나간 자리에 녹음이 짙어졌다. 장미가 녹음 위에서 활짝 웃으면 깊숙한 유월이다. 봄이 짧아지고 여름이 길어진다더니 봄다운 봄은 느끼지 못하고 곧바로 더위하고 맞닥뜨리게 된 것 같다. 하늘하늘한 봄옷을 입고 나들이하고 싶었는데 너무 빨리 가버려 아쉬움에 내년을 기약해 본다.

전 세계를 강타한 역병의 기세가 수그러들자 결혼식이 줄을 잇는다. 남동생의 딸이 결혼하더니 여동생의 아들도 바로 결혼을 한다. 친구의 자식들, 친척의 아이들, 지인들 자식의 청첩장이 기다렸다는 듯 날아온다. 손녀 양육으로 참석하지는 못하고 축의금으로 대신한다.

이모가 축가를 불러야 한다는 조카의 부탁을 받고 여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젊은 애들도 많은데 왜 내가 하느냐 했더니 조카의 부탁이란다. 딸 결혼 때 축가 부르까 했더니 두 손을 흔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럼 색소폰 부를까 해도 절대로 하지 말란다. 축가로서 아주 좋은 노래가 있어서 해주려고 하는데 하니까 너무 친정에서 나서면 시댁에 미안하다나.

남동생의 딸은 기획사에 근무하다 보니 가수들이 줄지어 부르기로 했다면 고모 미안하지만 안 되겠어 한다. 너는 생각도 안 했는데 했더니 다행이란 표정이다. 축가를 부르기로 허락했지만 어째 맘이 편하지 않다. 친구 중에 부를 사람이 없나. 친구 관계가 안 좋은가.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

결혼식 날짜가 임박해서 조카한테 전화가 왔다. 예식장 측에서 시간이 촉박하다고 일절만 부르라 한다고. 그래도 그렇지 공장도 아니고 어떻게 시간을 맞추라고 하는지 어이가 없다. 예식장 측에 전화해서 따지려 하다가 신랑 신부가 기분 좋게 결혼을 해야지 싶어 좋을 대로 하라고 했다.

아침 일찍 인천 송도로 차를 몰았다. 손녀에게 예쁜 한복을 입히고 먼저 결혼한 조카딸에게 손녀를 책임지라는 특명을 내리고 함께 움직였다. 세상은 참 좋아졌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가니까 바로 예식장 앞까지 안내한다. 이 안내자가 없다면 어떻게 했을까.

리허설을 하고 본 예식에서 축가를 불렀다. “햇덩이 같이만 살아라. 환하게~ 환하게 달덩이 같이만 살아라. 둥글게~둥글게 화촉 동방 밝은 불에 깨가 쏟아지도록 연지곤지에 별이 앉아 꽃냄새가 나도록~ .”

처음엔 떨릴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어서 얼굴이 두꺼워졌는지 아님 봉사할 때마다 노래를 불러서인지 담담했다. 예식 마치고 조카 내외가 와서 오늘 정말 좋았다고 인사하니까 어깨가 으쓱해진다.

사촌들도 어쩐지 예쁘게 꾸몄더라니 하고는 오늘 정말 좋았다며 한마디씩 거든다. 어릴 때부터 별난 사람이더니 명물이라며 함께 웃는다.

좋은 인연으로 아들이 된 친구가 있다. 몇 년 전 결혼할 때 주례를 부탁해서 예식 집전은 하고 주례사 대신 편지를 읽은 적이 있다. 바람이 많은 제주도임을 과시나 한 듯 서 있기도 힘든 주례석에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한 야외결혼식이 생각났다.

어떤 인연인지 다양한 경험들이 나를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세포가 좌~악 조여 오는 것 같은 긴장감이 나를 흥분시키다. 평범하게 늙어가다가 어느 순간 새로운 일이 다가오면 온몸의 세포에 생기가 넘치며 새로운 활력이 되는 것 같다.

속물처럼 살지 말자고 했는데 그곳에 푹 빠져 기쁨을 만들며 점점 허우적거린다는 느낌이 든다. 如如하게 살고자 했는데 세상 속을 유영할 것 같다. 어차피 전생부터 이어진 인연이라면 흐르는 대로 나를 맡겨보리라.

손녀가 조금 크니까 데리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다. 멍청하게 늙어가기보다는 뭔가 해야 마음이 안정되는 이상한 성격이다. 남들은 극성맞다고 하겠지만 나는 운신이 어려울 때까지 뭔가 하고 있을 것 같다.

7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조카에게 축가를 부탁받았다는 것도 뿌듯한 행복으로 다가온다. 요즘 누가 늙은 이모에게 노래를 불러 달라고 할까. 평소에 예쁘게 바라봐 준 이모였기에 선뜩 제안한 거라고 스스로 만족한다.

연기자도 아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더 나이 들면 불러줄 사람도 없겠지. 남들이 늙어가며 주책이라고 해도 난 아직 청춘이라 외치며 다가오는 경험을 만끽해야겠다.

성질이 불같아 싫은 소리도 잘하는 내게 등 돌리지 않고 항상 응원해주고 내 의견에 응원해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도 감사하다.

나보다 주변을 더 챙기고 살려고 했는데 이기적인 생각이 자주 든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좀 더 여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러지 못하고 나를 우선시하게 된다. 시간이 흐른 후 후회하곤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나이 들면 마음 수양이 더 잘 될 줄 알았는데 더 고집스럽고 자기중심적이 되는 것 같아 불안하다.

여유를 가지고 넓은 마음으로 사는 분들을 만나면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진다. 그분들은 어떻게 마음을 다스릴까. 얼마나 더 살아야 그렇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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