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아침을 열며] 달리는 등대(燈臺) 이야기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인테리어디자인학과 객원교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22.08.07 16:2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 건축인테리어디자인학과 객원교수

지난 7월 학교시설 안전 인증심사로 아산 관내 학교를 방문하게 되었다. 천안아산역에서 택시를 타려는데 출근 시간대라 이미 많은 사람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차례가 되어 승차하니 반갑게 맞아주는 운전기사의 첫인상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가볍게 통성명을 하고 학교까지 가는 도중에 많은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사실에 귀가 솔깃하였다.

그는 20세부터 운전하여 나이가 73세라며, 이 지역에서 1호 운전사라고 당당하다. “목적지까지 달리는 동안 희망과 행복 받아 가세요. 저로 인해 다른 사람이 행복한 모습을 보면 큰 보람을 느껴요. 앞으로도 계속 행복을 전하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며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만으로도 따듯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절로 숙연해진다.

그는 아산에서 개인택시를 53년째 몰고 있다. 채 한 평이 안 되는 비좁은 택시 안에서 하루 평균 15시간가량을 보낸다고 했다. 평일엔 개인 영업시간을 갖고 휴무 날에는 인근 주민센터로 향한다. 바르게살기운동 회장이기도 한 그는 이웃에게 무료 운행 봉사를 하기도 한다. “봉사라는 게 별거 있나요. 욕심을 버리고 저보다 조금 더 어려운 이웃에게 관심을 두는 것뿐입니다.”

그럴 뿐만 아니다. 그의 택시에는 특별함이 있다. 택시 뒤에는 항상 태극기가 달려있다. 차 트렁크 안에는 50여 장의 태극기가 들어있다. 운행 중 태극기가 불결해지면 곧바로 새 태극기로 교체한다. 그는 태극기는 나라의 얼굴인데 깨끗한 태극기를 달고 다니는 게 기본이라는 것이다.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는 13년 전부터 택시를 타는 승객들에게 버츄카드(virtue card)를 한 장씩 선물하고 있다. 52장으로 구성된 이 카드는 감사, 배려, 봉사, 이해, 존중 등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는 문구가 적혀있는 이를테면 ‘희망’ 카드다. 지난해 사업에 실패한 승객이 버츄카드를 뽑은 후 힘을 얻어 재기했다는 일화도 전해준다.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은 한 승객이 택시에 앉아 낙담하고 있을 때 버츄카드를 한 장 뽑으라고 건네주니 우연히 ‘용기’라는 단어가 나왔어요. 카드를 읽고 저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 자신감을 얻은 표정으로 택시에서 내렸지요. 얼마 뒤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가게를 새로 차려 재기에 성공했다는군요.”

53년째 택시 운전을 하다 보니 특별한 추억들도 많이 있다며, 1981년 이웃에 사는 임산부를 태우고 천안의 한 병원으로 가던 중 택시 안에서 아기를 받은 경험도 그중 하나란다. 또 옆집에 살던 산모가 진통이 온다고 도움을 청하여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향했는데 예전에는 넓은 도로가 없다 보니 시간이 꽤 걸려 그만 양수가 터지고 아기가 나왔단다. 그 아이가 커서 지난해 장가를 갔고 지금까지 서로 친하게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며 신이 났다.

남을 위하는 그의 마음은 ‘항상 남을 배려하며 기본에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자’라는 좌우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자기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두 발로 걸을 수 있고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말입니다. 또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 그릇만큼만 담으면 되는데 요즘은 다들 너무 욕심 많은 세상이 된 것 같아 아쉽지요.”라며 여운을 남긴다.

사실 그도 믿었던 사람에게 배반을 당하고 술과 담배로 어려운 시절을 지내다, 갑자기 찾아온 암의 고통을 가족의 사랑과 배려로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개척한 당사자이다. “암 수술을 마치고 남을 도와주며 살다 보니 오히려 내가 ‘행복’이라는 선물을 받은 것 같아요. 전 암 후유증 때문에 죽는 날까지 약을 먹어야 합니다. 하지만 더없이 행복합니다.” 이웃들에게 ‘봉사왕’으로도 불리는 최 씨. 그는 “먼 훗날 불우 어린이와 노인들을 함께 돌보는 시설을 운영하고 싶은 소박한 소망도 갖고 있다”라고 했다.
 
그의 말을 경청하며 목적지에 도착할 무렵 그는 52가지의 덕담이 들어 있는 버츄카드를 내밀며 하나를 뽑으라고 권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뽑은 것은 용서(容恕)였다. 용서에 대한 설명과 함께 다짐을 권하는 내용이 마음에 와닿는다. “나는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합니다. 나 자신도 용서합니다. 나는 나에게 잘못한 사람이 용서를 구하면 그를 받아들입니다. 나는 나의 잘못에 대해서도 용서를 구합니다. 나는 실수로부터 배웁니다. 나에겐 세상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계속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라고 적혀있는 글귀가 힘을 준다. 그렇다. 서로가 이해하고 용서하며 살면 이 사회가 밝아지고 더 행복해지지 않겠는가.

기회가 될 때 종종 택시를 타지만 오늘처럼 감동 어린 순간은 처음이다. 불친절로 각박한 사회에 갈수록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있는 요즈음 자원봉사는 스스로 원해서 자신의 시간, 전문성, 금전, 사랑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는 일을 하는 천사의 영역이다. 그들은 이런 고귀한 행위를 통해서 인생의 기쁨과 만족을 찾는 사람들이다. 더욱이 지역주민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묵묵히 일하며 승객에게 다가가는 그가 바로 사회를 밝히는 등대처럼 돋보였다. ‘봉사왕’이라는 별칭을 가진 최문호 씨! 그것도 한곳에 머물지 않고 달리는 등대, 달려가는 등대로서 그와 함께한 행운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