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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처서(處暑)가 중요한 까닭

최혜진 목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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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8.22 14:34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최혜진 목원대 교수

올 여름 유난히 심했던 폭염과 폭우는 안그래도 코로나로 뒤숭숭한 사회에 더욱 큰 고통을 가중시켰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유럽에는 500년 만의 가뭄이 찾아왔고 맹렬한 더위에 여러 사건, 사고가 많았으니, 전세계인들은 올 여름이 그저 무사히 지나가기를 소원하고 있을 듯하다. 올해 8월 23일, 그러니까 오늘은 절기로 열네 번째 오는 처서(處暑)이다. 처서는 입추(立秋) 다음의 절기로 더위가 그친다는 뜻을 담고 있으니 여름을 힘겹게 나고 있는 우리들에게 반가운 날이 아닐 수 없다.

예전 세시풍속의 절기는 농사력에 맞추어 지낸 것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날씨 변화의 주요 기준이다. 처서는 여름이 점차 물러가고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됨을 알리는 지표가 되는 날이다. 예전 고려사에는 처서 후 10일 경이 되면 천지에 가을의 기운이 돌고, 15일 경이 지나면 곡식이 익어간다고 하였으니, 계절의 변화가 분명해지는 때인 것이다. 처서가 지나면 햇볕은 누그러지고 풀은 자라지 않으므로 벌초하기 좋은 때가 온다. 장마 동안 젖은 옷을 말리거나, 책을 널어 곰팡이 등을 방지하는 일을 하는 것도 바로 이 때 하던 일이었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재미있는 속담도 있다. 처서가 지나면 서늘한 기운이 들기 때문에 모기도 사라지고, 대신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처서 무렵의 날씨가 일년 농사의 풍흉을 결정한다는 데 있다. 이 때는 벼의 이삭이 패서 강한 햇살을 받아야 성숙해질 수 있기 때문에 비록 서늘한 기운이 시작된다 하더라도 쾌청하고 맑은 날씨가 계속되어야 한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속의 곡식도 준다’고 하거나 ‘처서날 비가 오면 큰 애기들이 울고 간다’는 등의 속담은 처서 이후의 날씨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동안 잘 자라던 곡식이나 과일들도 처서에 비를 맞으면 흉작이 된다. 반면 비나 바람을 맞고 견딘 열매들은 처서의 햇빛을 통해 마지막 힘을 다해 영글어가는 것이다. 일년의 농사가 처서 후 보름간을 잘 지나야 추석의 기쁨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농부들은 처서비를 몹시 꺼리고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 때를 지나게 된다. 올여름 폭우와 산사태 등으로 재난을 입은 많은 분들의 빠른 회복을 위해서도 우리는 당분간 맑은 날씨가 계속되기를 두 손 모아 빌어야 한다.

올 여름이 여러모로 힘들었던 것은 꼭 날씨 때문만은 아닌 것같다. 대통령 취임 100일을 지나면서 곤두박질 친 지지도와, 아직 이렇다할 혁신을 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검찰정부 덕에 국민들의 피로감도 높아졌다. 코로나는 다시 기세를 떨치고 확산되고 있지만 전보다 나아진 방역은 없고 알아서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는 무정책도 문제다. 지방정부는 지난 정부의 일을 갈아엎는 데만 몰두하니, 행정낭비와 혼란도 점차 커지고 있다. 시행착오의 기간은 하루라도 빨리 끝나야 한다.

처서는 농사일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여름의 고통이 물러가고 새 계절 가을이 오는 것을 알리는 이 때, 처서가 지나면서 정치도 사회도 경제도 전환되고 안정되기를 바란다. 여당의 혼란 통에 국민들은 늘 불안하다. 처서 후 처서비가 내려 정국이 더욱 어려워진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하지만 날씨가 정치와 다른 점은 분명히 있다. 비가 내리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자연현상이지만, 정국의 처서비는 인간 의지로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날씨도 정치도 처서를 지나 숨통이 트이고 열매를 만드는 햇볕이 비추기를 바라는 심정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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