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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그해 추석은 행복했네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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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9.06 15:0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어느 해 추석이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주방을 오가며 부산을 떨었다. 혹여 잊을까 싶어 며칠 전부터 목록을 적어가며 준비해 둔 찬거리를 챙기고 소소한 물품들을 다시 살폈다. 그날은 아침 일찍 시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오후에는 친정 식구들과 집 근처 자연휴양림에서 하룻밤 추석 달맞이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해마다 추석이면 아침 일찍 시댁을 다녀와 곧장 친정으로 내달리곤 했다. 부모님께 잘 어울릴법한 옷을 사고 사과를 비롯한 과일 상자를 선물로 챙겨 길을 나서면 마음에도 산뜻하니 청량한 바람이 불었다. 친정 가는 길이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길가의 가을꽃이 줄을 지어 따라오며 생글생글 나를 향해 웃어주는 것도 같았다. 가는 내내 눈이 즐거웠던 기억, 그러나 이젠 추억이 되어버렸다.

몇 해 전 아버지께서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후 친정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아버지는 막내아들이 사는 집 근처 요양병원에 장기 입원하셨고 더불어 엄마도 아들네 집으로 들어가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셨다. 아버지께서 밤을 낮처럼 일해 번 돈으로 사들인 집 앞 논 서너 마지기는 누구도 농사짓겠다는 자식이 없어 이웃 마을 지인에게 팔아버렸다. 고추와 감자를 주로 심던 집 뒷산 아래 너른 밭은 서울서 직장생활을 하다 은퇴 후 내려온 나이 지긋한 부부가 도지세만 내고 대신 농사를 짓기로 했단다. 그렇게 아버지는 오랜 세월 부모님을 모셨고 자식을 키우며 정 들여 살아낸 고향을 떠났고 나는 친정을 잃었다.

그때 알았다. 나에게 친정이란 얼마나 힘이 되고 따뜻한 둥지였는지…. 명절이 되어도 선물꾸러미를 챙겨 다녀올 고향이 없다는 건 참 서글픈 일이었다. 서너 해, 해마다 명절이면 속을 앓고 홀로 마음을 잡느라 애를 먹었다. 갈팡질팡 몇 해 그리 헤매다 생각해 낸 것은 내가 사는 집 근처로 형제들을 불러모으는 일이었다. 우리 음성지역은 교통의 요지에 자리 잡고 있어 전국 어디서나 한두 시간 내 접근이 가능해 멀리 떨어진 가족들이 만나 함께 휴양을 즐기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 그 해 추석이었다. 작은 저수지를 끼고 굽이굽이 고운 숲길을 돌아 아담한 숲속 휴양림으로 부모님과 형제들을 초대했다. 적당하니 거리를 두고 지어진 여러 채의 집들은 외관도 그림 같았고 내부는 단정했으며 깔끔했다. 근처에는 한적하니 가벼이 걸을 수 있는 산책길도 있다니 더할 나위 없는 장소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이곳 음성으로 이사 온 지 수년이 흘렀건만 이제야 이곳을 찾아오다니.

첫째 둘째 셋째…. 형제들이 모여들었다. 먼저 평택에 사는 동생네가 한 시간 남짓 차를 몰아 부모님을 모시고 도착했다. 거동이 불편해 모든 것이 어렵지만 차근차근 아버지는 조금씩 걸음을 내디뎌 딸이 사는 이곳 음성까지 오셨다. 오랜만에 엄마 얼굴에도 환하게 꽃이 피었다. 십시일반 저마다 준비해온 소소한 음식들을 마당 너른 평상에 펼쳐놓으니 알록달록 추석 명절 기분도 났다. 맛있는 만찬에 모처럼 부모님과 온 형제가 즐거운 날이었다.

그날은 달빛도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을 축하라도 하듯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은은한 달빛 아래 부모님과 자식들이 둘러앉아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가 꽃으로 피어나던 시간. 근처 숲에서는 귀뚜라미가 울고 하늘 가득 별이 쏟아지던 그해 추석은 더없이 행복했다. 창가로 스며드는 달빛을 이불 삼아 엄마와 딸들이 나란히 누워 지나온 옛 추억에 젖어 쉬이 잠들지 못했다.

해마다 이곳에서 만나자 약속도 했건만 올해도 돌아오는 추석엔 저마다의 자리에서 밤하늘 달을 봐야 할 듯하다. 끝내 끝을 보여주지 않는 코로나 탓에 내년을 기약한다. 그저 어느 해 행복했던 그 날을 마음의 위안으로 삼아본다.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다. 어떠한 우울함도 때로는 지나온 추억으로 잊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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