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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에피스테메와 꼰대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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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9.13 13:08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실내 흡연을 다룬 80년대의 기록 영상이 화제다. 당시 시내버스 안에서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는 직장인의 모습을 촬영한 영상물인데, 온라인에선 몰상식하다느니, 말도 안 되는 기초 소양의 부족이라느니 갑론을박이 진행 중이다. 또 당시 드라마에선 설거지하는 남편을 본 어르신들이 혼비백산하며 며느리나 딸자식을 쥐 잡듯 다그치는 모습이 나온다.

20세기의 대표적인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의 대표작 ‘말과 사물’에는 ‘에피스테메’라는 용어가 나온다. 본래는 그리스어로 지식을 뜻하는 말인데, 미셸 푸코는 이를 특정 시대를 무의식적으로 규정하는 체계라고 했다. 시대를 관통하는 공통된 인식이나 그 시대를 특정하는 문화라고 보면 쉬울 것이다.

따지고 보면 각자가 겪어 온 에피스테메가 다른 탓이다.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우던 직장인은 간접흡연의 폐해를 무시한 몰상식한 남자가 아니라, 동시대의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당연히 여기던 시절의 부모님 세대였을 뿐이고, 부인을 대신해 설거지하던 남편을 다그치던 어르신들은 꼰대 감성 가득한 괴팍한 기성세대가 아닌 당시의 가부장적 세태를 살아오던 부모님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보다 훨씬 먼저 민주주의가 자리 잡고 타 인종에 개방적이라 여겨지던 미국에서도 1960년대까지 유색인종은 화장실과 식기구를 따로 써야 했다. 그리고 그런 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을 하고 싸워나가는 사람들이 생기기 전까지는 모두 당연시하며 그 시대의 에피스테메로 여기며 살았다.

오페라사에서도 각 시대를 대표하던 에피스테메가 있었다. 오페라가 태동한 17세기 초반엔 오페라의 소재는 무조건 그리스, 로마 신화여야 했다. 그 외의 소재가 오페라로 소재로 쓰이는 것은 몰상식과 몰염치였다. 감히 종합예술인 오페라의 소재로 너저분한 인간사는 허용되지 않았고, 신들의 질투와 축복, 저주를 극복해나가는 인간이나 영웅스토리 정도는 되어야 오페라의 소재로 쓰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신화에서 벗어나 최초의 역사극을 소재로 다룬 오페라는 반세기가 지나서야 등장했다. 그것도 동시대가 아닌 고대 로마의 네로황제 시절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여전히 잘 팔리는 오페라에선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불리는 억지 해피엔딩이 유행이었다. 이야기가 꼬이고 꼬여 도저히 해결방법이 없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신이 나타나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정리해버리는 방식은 몹시 편리했다, 더욱이 기존의 새드엔딩을 억지로 해피엔딩을 만들며 죽은 주인공을 되살릴 수 있게 되자, 주역의 멋진 아리아나 듀엣으로 오페라를 화려하게 마무리 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었다.

현대엔 지독한 아동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와 노동착취로 여겨질 만한 거세가수 카스트라토는 당대에는 슈퍼스타 아이돌로 누구나 선망하던 직업이었다. 전 유럽을 휩쓸던 나폴레옹이 카스트라토를 엄격하게 금지한 후에도 카스트라토는 명맥을 유지했고, 그를 위한 작품도 계속 작곡되었다. 당시엔 카스트라토가 비인간적이라고 여길 만한 도덕적 판단도 희박했고 굳이 문제 삼던 사람도 드물었으니까.

예전엔 서울대 음대 교수가 대중가수와 듀엣을 부른 일로 무대에서 거의 퇴출 직전까지 갔던 일도 있었다. 지금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만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찬반양론이 비등했었다는 사실은 각자의 에피스테메가 다름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추석 한가위를 보냈다. 우리는 명절에 여러 세대의 친족이 모여 친교를 나눈다. 본래 취지는 좋지만, 부작용이 더 도드라지는 모양새가 아쉽다. 어르신들 대하기가 만만치도 않을뿐더러 먼 친척들과 만나 이런저런 갈등을 겪는다는 기사들만 넘쳐난다. 온라인에서는 ‘명절 잔소리 피하기’, ‘잔소리 레벨별 용돈’, ‘명절 금지어 준칙’ 등 온갖 밈들이 가득하고 어른들과 그 밑의 세대가 서로 악의로 대하지 않았음에도 온통 상처를 받는다고 난리다.

각 시대에 통용되던 에피스테메는 당시에는 지극히 당연하고 보편적인 사고와 정서였다. 시대를 지나며 여권과 인권이 신장하고, 현재도 세대를 거치며 좀 더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질서와 규칙을 찾는 중이다. 따지고 보면 세대 간의 갈등은 각자가 겪어낸 에피스테메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세대가 겪은 에피스테메가 다름을 이해한다면 세대 간의 갈등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그래서 ‘라떼는 말이야~’로 대표되는 꼰대는 자신이 겪어 온 에피스테메를 다른 이에게 강요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 이전세대를 자신의 에피스테메로만 잣대 삼아 쉽게 꼰대라며 폄하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무시한 처사다. 각자가 살아온 시간에 상대가 지내온 시간을 담아내 보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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