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문화속으로] 넘어진 김에 쉬어가자

이혜숙 수필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22.10.03 13:43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아주 강력하고 힘이 센 녀석이 우리나라에 온단다. 최남단 제주를 시작으로 북쪽을 향해 올라오면서 세찬 비바람으로 몰고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한다. 이름도 어려운 힌남노 태풍이다. 녀석은 주변의 모든 기운을 빨아들여 괴물이 되려고 한단다.

얼마 전 장마로 피해를 많이 본 우리에게 다시 또 아픔을 주려고 한다니 자연 앞에 너무 작고 나약한 존재가 인간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자연재해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기에 피해가 적기만 기도할 뿐이다.

태풍이라는 뉴스에 집안을 단속하고 예약한 병원으로 왔다. 큰 수술은 아니라는 의사 말에 걱정하지는 않았다. 팔에 신경마취를 한다는데 수술하는 동안 기계 소리와 의사들의 말을 듣는다는 게 겁이 날 것 같았다. 결국은 전신마취를 하고야 말았다.

코로나로 인해 병실에 들어오려면 간호하는 가족도 pcr 검사를 해야 한단다. 맏동서가 수술하는 동안 지켜보러 왔지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냥 돌려보내고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건강이 약해서인지 마취가 오래갔다. 간호사가 깨우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뜨라는데 귀로 들리는 소리에 반응할 수가 없다. 눈꺼풀이 올라가지 않았다. 병실로 옮겼다며 눈을 뜨란다. 못 뜬다고 했더니 설명할 말이 있단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종이에 써놓고 가라고 했다.

오전 11시에 들어간 것 같은데 오후 4시 다 되어서 서서히 마취가 깼다. 전화벨은 울리는데 일어날 수가 없다. 청소하러 온 아주머니에게 옷장 안의 전화기를 꺼내 달라고 부탁했다. 전화기를 열어보니 수십 통의 전화가 와 있었다. 걱정된 딸은 병원에 전화해서 상태를 물어보고 오지 못하는 가족들은 받지 않는 전화기만 붙잡고 있었나 보다.

간신히 정신 차리고 괜찮다고 하고 비몽사몽으로 누웠는데 신경이 마비된 손이 문어 다리처럼 흐물거리며 내 맘대로 되지를 않는다. 연체동물 같다고 해야 하나. 팔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감각이 전혀 없고 남의 손을 만지는 기분이다.

덴젤 워싱턴이 주인공으로 목 아래로는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 역인데 수사를 지휘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제목은 생각나지 않는데 입으로 컴퓨터를 다루며 간호사의 도움으로 마지막 결론이 날 때쯤 범인이 나타나 주인공을 죽이려 한다. 컴퓨터로 침대를 조정하며 범인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영화인데 내 팔이 제멋대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니 주인공이 생각났다.

지금 나는 잠시 팔을 움직일 수 없을 뿐인데 이렇게 불편하고 힘든데 평생을 그렇게 산다면 과연 올바른 정신으로 살 수 있을까. 오른손만 수술했는데도 모든 것에 서툴고 힘들다. 전신 마비로 산다면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텐데. 구족화가, 의족을 한 마라톤 선수, 장애인이면서 세상을 당당히 사는 사람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3일의 입원 생활이 힘들게 느껴진다. 쇠해진 체력 때문인지 약의 부작용 때문인지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워 일어나기도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간호해 줄 사람도 없다. 이런 시기에는 아프지 말아야 하는데 병원 신세를 져야만 하니 고통이 두 배가 되는 것 같다.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는 코로나가 원망스럽다.

어지럼증과 메스꺼움이 가시질 않는다. 운전을 할 수 있을까. 지인이 온다고 했는데 자기를 태우고 올 사람이 안 오고 있다며 못 오고 있다. 메스꺼움과 어지럼증을 진정시키는 링거 한 대를 더 맞고 퇴원을 했다. 평소에 왼손으로 운전했는데 오른손을 쓰지 못해도 불편할 뿐 큰 지장은 없는 것 같다.

손이 쑤시고 아려서 잠도 못 자다가 통증이 사라지니 푹 잘 수 있어 행복했다. 예민한 탓에 병원에서도 못 자고 거의 뜬 눈으로 재난 방송만 보았다. 집에 오니 휴가로 집에 온 남편이 간호해주니까 마음이 편안했던지 그동안 못 잔 잠을 아주 푹 잤다.

일주일 후, 내원하라는 말에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는데 할머니 한 분이 물리 치료를 받는데 왜 이렇게 비싸냐고 하면서 접수하는 직원에게 묻는다. 원래 그 정도의 가격이라고 하니 너무 비싸다고 한숨을 쉰다. 팔십은 넘어 보이는 어르신이 굽은 등으로 난감해하는 모습은 보는 내내 마음이 짠하다. 몇 번을 더 와야 한다며 울상이다.

저 어르신은 평생 자식들을 위해 사셨을 것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 내주었을 텐데 당신에게 쓰는 돈에 벌벌 떠는 모습이 안타깝다. 이제 남은 삶은 당신을 위해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운이 좋았는지 아주 친절하고 자상한 의사를 만났다. 마음 편히 내 손을 맡길 수 있는 신뢰 가는 의사를 만났다는 것이 행운이 아닐까. 처음에는 수술하지 말고 좀 더 기다려보자고 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심해지는 통증에 결국에는 수술을 하고 말았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이 조금씩 나빠지는 것 같다. 좋아질 수는 없어도 조금씩 고쳐가며 살아야 하겠지. 큰 병이 아닌 것에 감사하고 살아야 하지 싶다. 회복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만한 것에 감사한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그동안 손녀 키우며 텃밭 가꾸느라 힘든 내게 주는 휴식시간이라 생각해야겠다.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