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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슬픔의 가을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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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11.01 13:35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산도 들도 온통 가을 속에 물들어 오색 창연한데 세상은 슬픔에 젖었다. 단풍잎은 나날이 붉어져서 지는 노을만큼이나 아름다웠건만 그 아름다움이 눈 속에 와닿지 않는다. 바람에 나뒹구는 갈잎들이 더없이 애잔하니 마음이 이리저리 갈피를 못 잡고 겉으로만 맴돈다. 고운 단풍으로 충만한 이 좋은 계절에 좋은 추억 하나를 얻어야 하는데 두고두고 잊지 못한 아픈 기억 하나를 얹었다. 누군가의 아픔에 눈이 가고 마음이 가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주말 새벽 아직은 온 세상이 잠들어 고요한데 고요한 정적을 깨고 휴대폰이 울렸다. 문자가 왔다. 이 새벽에 누가 문자를 보내는지, 주말의 달콤한 단잠을 깨운 휴대폰을 투덜대며 곁눈으로 보니 녀석이다. 더위가 한창이던 올여름에 군 제대 후 학업 차 복학과 동시에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들이다. 무슨 일인가 싶어 놀라 문자 내용을 살폈다. 내용인즉슨 지금 서울에서 큰 사고가 났단다. 그렇지만 자신은 학사에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문자였다. 순식간에 잠이 달아났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텔레비전을 켜니 지난밤 상상도 못 할 일이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더없이 아름답고 고요히 깊어가는 가을밤에 큰 폭풍우가 온 나라를 집어삼켰다. 아침도 되기 전에 여기저기서 일가친척들의 전화가 빗발친다. 서로 안부를 묻느라 휴대폰이 잠시도 쉴 새가 없다. 형제들은 물론이고 뜸하니 연락조차 잘 주고받지 않던 지인들까지 서로의 안위를 묻느라 여념이 없다.

평소에 오가며 알고 지내는 아파트 단지 이웃들이 걱정된다. 지지난해 옆동 아주머니네는 아이 셋을 모두 서울로 보내 아예 아파트 한 채를 얻어 주었다. 주말마다 이것저것 밑반찬을 해 나르고, 수시로 택배를 올려보내며 자식들의 팍팍한 서울살이를 지원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걱정되는 마음에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니 괜찮단다. 천만다행이었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남의 일이 나의 일처럼 마음이 쓰인다. 더군다나 내 자식 또래의 소중한 젊은이들 아닌가. 속속들이 인터넷을 통해 올라오는 저마다의 사연에 목 밑까지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라온다. 이제 갓 임용에 합격하고 특수학교 교사로 근무한 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은 사회 새내기가 이번 참사의 희생자 중 한 명이란 말을 들었을 땐 내 자식처럼 안타까웠다. 항상 살갑고 속이 깊었다는 어느 아버지의 귀한 딸의 이야기는 더할 나위 없이 깊은 슬픔으로 마음이 아팠다. 백혈병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몇 년 전 골수이식까지 해 주었다는데 예기치 않은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까. 이 넓은 세상에 오직 아버지와 딸로 둘이서 꾸려온 시간은 이제 어디에서 채워야 할까. 삶은 더러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 곤혹함을 선서하곤 한다지만 이렇게 허망한 삶이 누군가에게 주어질 줄은 몰랐다. 온종일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월요일 아침 출근을 해서는 책상 위에 놓여있는 검은색 리본을 보며 또 한 번 울컥했다. 애도의 시간이 며칠간 있을 것이라며 나눠준 리본을 쉬이 가슴에 붙이지 못하고 손으로만 만지작만지작 저마다 생각들이 깊다. 일을 시작하기 전 즐거이 모여앉아 주말 지낸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오늘은 너나 할 것 없이 침묵으로 일관한다. 동료 교사 한 분은 주말에 근처로 막바지 단풍 구경을 떠나기로 약속을 해 두었는데 취소했단다. 그야말로 금지옥엽, 애지중지 길렀을 누군가의 자식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함께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로서 우리의 자식들도 된다. 저들의 슬픔에 나의 마음을 얹어 슬픔을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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