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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만남

이상엽 건국대학교 융합인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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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12.11 12:03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상엽 건국대학교 융합인재학과 교수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노사연 "만남")
사람들은 왜 만날까? 외로움이다. 외로움 때문에 사람을 만나게 된다. 혼자 있으면 편하다.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건 정도는 다르지만 번거로움이 따른다. 번거로움보다 외로움이 크게 느껴질 때 사람을 찾는다. 개미 한 마리를 잡아 혼자 놔두면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 모여서 협력하는 전략을 생존의 기본으로 삼아 온 까닭에, 혼자 있으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만남의 욕구에 커진다. 외로워서 누구든 만나 상실감을 달래려고 한다. 타인과 시간을 보내면 외로움이 달래지기도 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게 있다. 허전함이다. 간절하면 그리움이다. 이게 사랑의 시작이다. 여기까지는 가지 않지만 만나면 그저 좋은 게 친구다. 이보다 약한 단계가 모임이다. 비교적 많은 교수들이 모이는 게 학회다.

외로워도 참으면 되지? 혼자 있으면 걸리적거리는 게 없잖아? 이로움이다. 같이 하면 생존에 이롭기 때문이다. 강릉 앞바다에서 백사장으로 몰려온 멸치 떼를 주워 담은 적이 있다. 시커먼 기름띠처럼 몰려다니는 정어리 떼도 마찬가지다. 큰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면 포식자에게 위협감을 준다. 혼자 돌아다니는 거보다 생존확률이 높아진다. 혼자서는 죽지만, 무리를 지으면 살아남는다. 지각(perception)형성 원리가 작용한다. 많이 모이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많은 사람들 중 누구를 믿지? 나와 비슷한 사람을 찾는다. 이게 공동체다. 교수들의 학습공동체가 학회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기 시작한 작년 중반기 이후 학술대회를 개최하면 교수들이 많이 모인다. 만남의 욕구가 강해진 것이다. 크고 작은 학술대회가 자주 열렸으면 좋겠다. 국가·사회에 대한 지혜와 지식이 쏟아지고, 공유학습의 기회가 많아지길 기대한다.

공공기관으로부터 학술대회 후원을 받을 땐 법인 형태, 법인이 아니더라도 사업자등록증(고유증)만 있어도 가능했었다. 작년부터는 기부금품법에 따라 기부금품 모집등록 단체만이 후원을 받을 수 있다. 인문·사회·문화융복합 분야의 경우 사무국의 규모를 제대로 갖춘 대규모 학회 몇몇을 제외하고는 단돈 1만원도 후원을 받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대학이나 학회나 큰 곳 우선이라 변화나 다양성의 확보에 한계가 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국행정학회 하계공동학술대회, 한국연구재단 지정 융합연구총괄센터의 HubCon Conference 및 공동학술대회처럼 ‘공유·협력’의 학술대회가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 중규모의 지역중심, 테마중심 학회들이 더 끈끈하다. '자기집단중심적 이타주의(parochial altruism)'. 나와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집단에 참여하는 건 결국 나 자신에게 이롭다는 생각이 작동되기 때문이다. 이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한국연구재단의 지원하는 학술대회 지원사업(2022년 예산 10억원)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 연구단체로는 1만209개(학회 4091개, 대학연구소 5954개, 일반기관 263개)나 있다. 예산 증액이 필요하다. 선정평가에서 대규모학회와 중·소규모학회를 구분하고, 발제자 수 등 형식적인 측면보다 담론 형성의 학술적·실용적 가치에 역점을 두고 선정했으면 좋겠다.

가성비가 높은 학술대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대면과 비대면을 혼합한 하이브리드 세미나도 활성화되길 기대한다. 열심히 준비한 논문의 효과가 배가되어야 한다. 자료집에는 나오지만 지식이라는 게 내 귀로 들어야 제맛이다. 핵심 세션은 녹화해서 유튜브에 공개하면 좋겠다. 일반인들도 같이 공부할 수 있게. 궁금하면 채팅으로 자유롭게 질문도 하고… 녹화기능을 갖춘 대학 스튜디오 시설이 많이 필요하다. 공유경제 차원에서 교통이 편리한 지역에 실비로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학술대회는 시간표상 비교적 여유로운 금요일에 열린다. 하루 또는 한나절에 여러 분과를 만들어 집중적으로 진행하다 보니 관심있는 분과에 동시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서너 시간 걸려 참석했는데, 마지막 토론자는 5분 이내에 마쳐달라는 좌장의 성화에 시달리기도 한다. 공유학습과 관련된 세션은 시간에 구애를 덜 받아야 한다. 세션 운영에 여유로움이 필요하다.

인문사회분야 학회들이라는 게 의약학·이공계처럼 후원해줄 기업도 거의 없다. 애달프게 모은 후원금과 회원들의 회비를 모아 학술대회를 치른다. 한 학기 수업을 마치고 연구실에서의 외로움을 학술대회에서 달랜다. 그동안 연구했던 거, 앞으로 국가·사회에 당면할 이슈 등을 다룬다. 학회장은 외로움에 지친 회원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한다. 밥값 계산을 하는 이는 돈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돈보다 우정을 더 중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할 때 주도적으로 하는 이는 바보스러워서 그런 게 아니다. 책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요즘 학술대회의 특징 중의 하나가 토요일에는 열리지 않는다. 토요일에 조교나 학생에게 좀 도와달라고 했다가는 자칫 갑질 시비에 휘말린다. 미안한 마음에 시간당 최저임금 이상의 수당을 주기도 한다. 그래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래저래 학회장은 재정난, 책임,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래도 학술대회는 다양하고, 지속적으로 열려야 한다.
서로 외로우니까.
같이 하면 이로우니까.
우리들의 만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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