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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새봄에 길을 묻다

김일호 한국문인협회세종시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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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03.05 09:57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일호 한국문인협회세종시지회장
눈부신 햇살 살포시 내려앉는 새봄의 뜰에서 약동하는 만물의 숨소리 들려온다. 남녘의 화신이 훈풍으로 불어와 가슴에 안긴다. 멀지않은 저편 논밭을 가로질러 흐르는 개울소리가 속삭이듯 가까이 들려온다. 때를 기다렸듯이 온갖 새들은 강을 건너 산과 들을 지나 한껏 자유로운 날개 짓을 한다.

오래 머물 것 같던 겨울 그림자는 어느새 몇 걸음 물러서고 있다. 지난 수 년간 우리네 얼굴마다 장막처럼 드리워졌던 마스크도 하나 둘 벗겨지고 가벼워진 심호흡과 함께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게 오랜 날 참고 기다렸던 희망의 봄날이 약속대로 찾아왔다. 멀어져 희미해졌던 기억속의 사람들이 불쑥 찾아와 꽃처럼 안겨 웃어줄 것 같기도 하다. 의지와 다르게 자꾸만 뒤쳐졌던 의욕도 움트는 자연의 기운에 힘입어 벌떡 일설 수 있을 것 같은 새봄의 문이 열렸다.

새봄은 그렇게 큰 소문 없이 조용히 찾아왔건만, 인간사 한편은 아직도 겨울 한복판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마음 편히 살아가기엔 미덥지 못한 불길한 징조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다양한 위험요소와 함께 인간관계의 갈등 수위는 더 높아지고 있다. 일찍이 거두어냈어야 할 상흔의 딱지 같은 그늘이 미래로 나가야 할 길에 드러누워 그 길을 막고 있다. 많은 민생들이 그 길 앞에 일단 멈추어 어디로 가야할지 방황하고 있는 오늘이다.

이념갈등, 노사갈등, 빈부격차, 치열한 정쟁은 그 경계를 쉽게 허물 수 없을 만큼 철통같이 단단하다. 상호 다름을 인정하거나 이해와 보완의 상생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죽거나 살거나 양보 없는 편싸움이나 다름없는 그 심각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장기적인 경기불황 등 단숨에 극복할 수 없는 주변여건에 의한 개인 서비스요금이 폭탄으로 안겨지고 있다. 그처럼 폭발 직전의 위험성은 고스란히 서민생활의 무게로 얹어지고 있다. 그 같은 사회적 혼란을 기다리기나 한 듯 타의 약점이나 부족함에 대해서는 잔인할 만큼 인간 이하의 타격을 가하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내편이 아니면 악마의 탈을 씌워서라도 가차 없이 돌을 던지는 풍조가 죄의식 없이 자행되고 있기도 하다.

정치도 다를 바 없다. 책임과 권한이 주어지는 자리에 앉게 되면 저들만의 리그로 변질되고 있다. 국민을 주인의 섬기겠다던 약속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파 간 상호견제와 선의의 경쟁으로 국가발전에 이바지하라는 국민들의 간절한 외침은 개봉하지 않은 우편물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네 편 내편 갈라치기로 선량한 국민들의 작은 소망마저 꺾어버리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정치의 현주소라고 해도 심한 표현은 아닐 것 같다.

모두가 그렇지 않겠지만, 가진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채우기 위한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되겠는가, 권력을 거머쥔 사람들이 깨끗하고 공정한 책임과 의무에 충실해야 하는 공복의 명찰을 숨긴 채 자신만의 영달과 안위만을 위하면 되겠는가,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과 비판을 외면하면 되겠는가 말이다. 아직은 살만한 대한민국이라고 하지만, 부끄러움과 분노가 한데 얽혀 미래로 가는 길을 막는 오늘을 변명할 수 없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옛말이 있다. 갈 수 있는 길이라 해도 반칙은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 것이 최소한 양심마저 지키려는 사람다움일 것이다. 긴 겨울을 이겨낸 봄이 찾아왔다. 서로 다투지 않고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연의 순리에 따라 움트는 경이로운 생명의 질서에 가야할 길이 보인다. 다시 새봄에 길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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