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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리모컨을 가진 자, 거실을 지배했었나니’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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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04.18 17:3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음악 과목 강의 때 어떤 장르의 음악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가장 좋은 방법은 공통으로 알만한 ‘어디서 들어봤던 곡’을 일단 ‘틀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얽힌 에피소드를 풀어 놓으며 왜 그 시대에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추론하다 보면 자연스레 곡의 시대적 배경이나 특성을 익히게 된다.

그런 ‘어디서 들어봤던 곡’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방송에서 지금은 있을법하지 않던 전설처럼 회자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시청률 5~60%의 국민 드라마나 경기 등이 그것인데, 지금은 절대로 가능하지 않은 시청률 수치이기에 더 새삼스럽고 감회가 깊다. 그런 수치들이 가능했던 이유는 지상파와 라디오로만 대표되던 채널의 희소성이었다. 오전 시간대와 저녁 시간 방송대 사이에는 아무 프로그램도 편성되지 않은 ‘화면조정시간’이 있었고, 심야에는 애국가 송출이 끝나면 우주배경복사의 증거라는 치지직 거리던 TV 노이즈 화면만 나왔었다. 길지 않던 방영시간 중 온 가족이 모이는 저녁시간에 방영되던 드라마는 그래서 전 세대가 다 볼 수 있는 소재와 보편성을 가져야 했다. 황금시간대 방송 3사의 음악 순위프로그램들은 세대를 막론하고 한자리에서 순위권 곡들을 듣게 만드는 권력도 누렸다. 당연히 채널 선택권을 틀어쥔 가정의 절대권력이 고르는 프로그램을 온 가족이 강제로 시청하던 시절 이야기다. 리모컨이 곧 권력이었다.

지정된 시간의 회차를 못 봐 ‘재방송’마저 놓치면 그 회차는 다시 볼 수 없는 시절이기도 했다. 그래서 국민 드라마의 최종회나 중요 회차는 모든 사람이 일찍 귀가하느라 대중교통이 북새통을 이루고, 경우에 따라선 역 대합실이나 지하철 역사에서 다들 발길을 멈추고 TV 앞에 모여드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드라마의 결말에 따라서 온 국민이 울고 웃었고, 때론 원하던 전개가 아니면 방송국에 시청자의 항의 전화가 빗발치던 시절 이야기다. 지금은 시청자 게시판 댓글 한 줄이면 끝날 일이지만.

그래서 인기드라마나 프로그램에 삽입된 곡들, 그리고 유명 CF에 삽입된 곡들과 순위프로그램 상위권의 곡들은 그 제목을 모르더라도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음악을 떠올리곤 했던 시절이었다.

스마트폰과 채널의 다양화는 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종편과 케이블로 대표되는 채널의 다양화는 더는 ‘화면조정시간’이라는 중간공백에 상관없이 24시간 시청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개개인이 들고 다니는 스마트 기기로 놓친 회차는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는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서비스나 방송국 VOD 서비스로 해결되니, 요즘은 TV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풍경을 찾아보기 힘들다. 방송 송출권이 제한되어있는 스포츠경기의 경우가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한 가족이 각자의 기기를 갖고 각자의 프로그램을 혼자 즐기는 시대가 되었다. OTT 계정 하나에 부여된 멀티 프로필로 각기 다른 프로그램을 즐기고 음악도 따로 듣는다. 이젠 TV를 ‘튼다’와 채널을 ‘돌리다’라는 표현은 아날로그 다이얼을 돌려가며 채널을 바꾸던 시대의 고어로 취급받는다.

부모나 자녀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나 드라마를 알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노래와 드라마 내용은 고사하고 제목도 낯설 것이다. 한 가족이더라도 각자의 스마트 기기로 각각 음악과 영상매체를 즐긴다. 그래서 예전처럼 과반이 넘는 압도적인 퍼센트의 시청률 수치나 순위는 이젠 찾아보기 힘들고, 두 자릿수 퍼센트만 넘으면 초 히트작 반열에 오른다. 각 세대는 그들만이 공유하는 음악과 매체를 중심으로 한 결속 효과가 점점 더 강해지고, 매체들도 해당 세대만을 타깃으로 집중적으로 공략하니 다른 세대에게 노출되는 빈도수도 현저하게 낮아진다. 세대 간을 넘나드는 문화를 찾기가 정말로 어렵다. 부모와 자녀 세대가 상대방의 문화를 즐기려면 일단 각 세대가 공고하게 구축해 놓은 장르의 벽을 넘어 일부러 찾아가 들여다보지 않는 한 알기 어렵다.

CF 삽입곡이나 드라마 삽입곡으로 여겨지는 음악들은 세대가 아닌 연령대별로 세분화되는 느낌마저 강하다. ‘어디서 들어본 노래’는 그래서 연령별 한정이 된 지 오래다.

이젠 한 프로그램을 거실에서 온 가족이 같이 보는 대신 각자 방구석에서 자신만의 콘텐츠를 즐긴다. 온 세대를 공통으로 아우르는 콘텐츠가 아쉬운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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