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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에서] 아침단상

강희진 음성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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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06.19 15:14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강희진 음성예총 회장
오늘 아침 카카오 톡 메시지가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 가끔씩 보내온 은사님의 메시지인데 역시나 오늘도 좋은 내용이다. 녹명(鹿鳴)이라는 제목인데 사슴은 먹이를 발견하면 먼저 목 놓아 운다는 것이다. 먹이를 발견한 사슴이 다른 배고픈 동료 사슴들을 불러 먹이를 나눠 먹기 위해 내는 울음소리라 했다. 수많은 동물 중에서 사슴만이 먹이를 발견하면 함께 먹자고 동료를 부른다고 하니 상생과 나눔의 마음이 담겨있지 않느냐는 내용이었다. 사슴의 이미지는 노천명 시인의 시가 너무 각인된 탓인지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이여’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올라 연약한 동물로만 생각했는데 오늘아침 사슴이 내개 준 교훈이 신선하다.

마음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데 세탁기 끝나는 소리가 나를 부른다. 미루었던 빨래까지 끝나면 오늘 시작은 행복이구나 하는 마음으로 세탁기 문을 열었다가 아뿔싸 한다. 빨래가 많지 않아 베란다에 있는 소형 반자동 세탁기에 돌렸는데 주머니에 휴지가 들어 있었던 탓인지 온통 흰 화장지가 번벅이다. 더구나 반자동 세탁기인지라 옷을 꺼내니 한 덩이로 엉켜 있어 난감하다.

요즘 독감으로 10여일을 고생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큰아이와 나트랑으로 여행을 갔다. 축제 준비 하느라 고생한 엄마를 위한다고 준비한 이벤트였는데 그 좋은 리조트에서 즐기지도 못하고 누워 있다가 왔다. 여행준비를 열심히 한 사위에게 미안했지만 몸살이 너무 심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돌아와서도 여러 날 째 감기와 싸우고 있는데 기침과 콧물이 멈추지 않는다. 코를 닦기 위해 화장지를 들고 다녔는데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을 모르고 함께 돌렸으니 이 사단이 났다.

화장지는 무채색 바지 네 개에 묻어 털어내도 떨어지지 않는다. 손으로 떼어도 보고 털 제거기로 밀어도 보지만 이미 베어버린 화장지 때문에 바지들이 희끗희끗하다. 세탁 전에 해야 할 기본이 주머니를 살펴보는 것인데 꼼꼼하지 못했다는 자책을 하며 부아가 올라온다. 그러다가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셀프토크를 했다.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어”

최근 몇 달 동안 괴로웠다. 내가 짊어진 책임감 때문에 몸이 부서져라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뭐가 잘못 된 건지 결과는 엉뚱한 곳으로 번져나갔다. 반복되다 보니 모든 것이 나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 같은 마음, 함께 일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눈치까지 보면서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어디에서도 위로를 받을 수 없어 시작한 셀프토크였다. 바지들을 보면서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어, 방법을 생각해보자’ 그러니 평온을 되찾는다. 상담을 하는 교수님이 책임감이 너무 강한 사람들은 일이 잘못되면 자신의 탓으로 돌이는 경향이 있다며 제시한 방법이었다. 그 처방이 오늘 또 이렇게 효과를 발휘한다.

나는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이란 시를 좋아한다. 꼭 나를 두고 쓴 시인 양 착각하며 마음이 울적할 때는 그 시를 카카오톡 프로필에 올려 두고 읽는다.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다.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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