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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정당방위' 범위…흉악범 제압해도 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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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08.08 17:17
  • 기자명 By. 고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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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신문=대전] 고지은 기자 = 서울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 이후 전국에서 모방범죄가 연이어 발생하는 가운데, 흉기에 찔린 피해자가 되레 상해 피의자가 됐다는 사연이 전해져 '정당방위' 범위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8일 한 방송사가 공개한 폐쇄회로(CC)TV 영상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대전 동구의 편의점 점주 A씨는 가게 앞에서 70대 남성 B씨가 휘두른 흉기에 허벅지를 찔렸다.

휴대전화를 보고 있던 중 피습을 당한 A씨는 B씨를 밀쳐낸 후 뒷걸음질 쳤으나 B씨는 다시 흉기를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A씨는 도망치기에 여의치 않자 발차기로 B씨를 쓰러뜨려 제압, B씨가 들고 있던 흉기를 빼앗았다.

B씨는 경찰 조사서 "편의점 앞에서 술에 취해 잠든 자신을 깨우자 화가 나서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이후 A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경찰로부터 정당방위가 아닌 '폭행죄'로 상해 사건 피의자가 됐다는 통보를 받은 것.

이에 A씨는 "향후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제압하든지 해야 하는데 정당방위라는 판결이 나오지 않을까봐 두렵다"고 호소했다.

형사 소송법상 '정당방위'는 타인의 불법 공격에 자신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가해자에게 반격하는 행동이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먼저 공격하거나 필요 이상의 방어를 해선 안되는, 또 방어 행위는 반드시 공격을 당하는 상황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소극적 방어'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 같은 조건은 기준도 모호하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어 인정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실제 재판부는 지난 2021년 함께 술을 마시다 흉기를 휘두르는 등 자신을 위협한 친구를 맨손으로 제압한 40대 남성 C씨에게도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가해자가 흉기를 떨어뜨린 후에도 C씨가 폭행을 이어갔기 때문에 정당방위가 아닌 '과잉방위'에 해당된다는 것. 가해자는 과잉방위로 한 달여간 병원 치료를 받았고, C씨는 흉기 난동으로 전치 6주의 상해를 입었다.

이처럼 수사당국과 재판부가 인정하는 정당방위 범위가 좁은 탓에 경찰 등은 물리력 행사에, 시민들은 호신용품·호신술 사용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중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정모(38)씨는 "물론 얼마전 경기 의정부서 흉기 난동 오인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애꿎은 중학생을 다치게 한 사건이 발생하는 등 과잉방어에 따른 부작용을 고려해야 하지만, 지나치게 엄격한 법적 기준은 자칫 경찰의 소극적 대응을 부를 수도 있다"며 "정당방위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김모(23)씨도 "갖가지 호신용품을 구매한 이후 '삼단봉과 호신용 가스총은 정당방위 인정이 특히 어렵다'는 뉴스를 봤다"며 "그렇다면 묻지마 범죄의 대상이 됐을 땐 도망치는 방법 밖에 없는 거냐"고 지적했다.

고등학생 이모(18)양도 "생명 위협을 느끼는 와중에도 법적으로 인정되는 선에서만 방어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냐"며 "가해자를 위해 만들어진 법 같다"고 꼬집었다.

법률 전문가들도 "호신용품 사용으로 상대에게 상해를 입힐 경우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고, 정당방위라 할지라도 입증을 못 하면 특수상해나 쌍방폭행이 될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한다.

한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7일 대검찰청에 '폭력사범 검거 과정 등에서의 정당행위·정당방위 등 적극 적용'을 지시했다.

앞서 윤희근 경찰청장도 연이은 흉기 난동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일선 경찰에 총기나 테이저건 등 물리력을 적극 활용할 것을 지시했다. 경찰은 범행 제압을 위해 총기 등을 사용한 경찰관에는 면책 규정을 적극 적용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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