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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분수

이종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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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09.13 16:4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종구 수필가
경로당에 가면 어른신들은 자식들 근황, 이웃 친지들의 안부(특히 병원 입원 등),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대화의 꽃을 피운다. 며칠 전에는 평소 말씀이 적으신 어르신께서 화가 나서 누군가를 비방하는 듯한 말씀을 하고 계셨다. “어휴! 제 분수를 알아야지. 옛말이 틀린 게 없어.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 한다고 그렇게 얘기했건만 도통 말을 듣지 않아서…” 알고 보니 외지에 사는 자식이 사업한다고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가져가서 부도를 맞았다는 이야기였다. 하던 일이나 잘하라고 했더니 큰 돈을 벌거라고 하면서 저지른 일이 잘못된 것이었다.

우리는 삶에서 흔히 쓰는 말이 ‘분수(分數: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를 알라’는 말이다. Socrates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과 통하는 말이다. 명심보감 안분편(安分編)에 ”安分吟曰 安分身無辱 知機心自閑 雖居人世上 却是出人間 「안분음」에 이르기를,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면 몸에 욕이 없고, 세상의 형편을 알면 마음이 한가해진다, 세상에 살더라도 오히려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라고 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켜 만족하라는 말이다. 이런 삶은 우리 조상들이 늘 꿈꾸던 삶이었다. 논어 술이(述而)편에도 “飯蔬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었으니 즐거움이 그 안에 있고 의롭지 않게 부귀를 누림은 나에게는 뜬구름과 같다)”고 하여 선비들의 이상적 삶으로 그려지곤 했다.

이런 선조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요즘 세상을 반추(反芻)해 본다. 속칭 금수저로 태어나 앉지 말아야 할 자리에 앉은 사람들, 뒷배가 좋아 고위직에 오른 사람들, 수완과 처세술이 좋아 큰 노력 없이 한 자리 차지한 사람들 – 그런 자리에 앉았다고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자리에 앉았으면 분수를 지켜 자리값에 맞는 행동을 하라는 것이다.

몇 년 전에는 모 재벌가가 보복 폭행으로 세상의 이목이 집중 됐었다. 고위직으로 임명 예정이었던 사람들이 흠을 잡혀 임명이 철회되기도 한다. 어찌 보면 모두 분수를 알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분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푼수(생각이 모자라고 어리석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 풀이)라고 한다. 주제 파악을 못한 사람들이다.

‘주제파악(主題把握 : 변변하지 못한 처지 따위를 확실하게 이해하여 앎)’이라는 말도 가끔 듣는다. 좀 비아냥 거리는 말이기도 하다. 엉뚱한 행동을 하거나 분위기에 맞지 않게 나서기를 잘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그렇지만 요즘 전해지는 뉴스를 보면 주제파악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사회 곳곳의 지도층에 있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성실하고 주제 파악을 잘하여 자신의 일을 완수하는 사람들이 송두리째 욕을 먹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엄마의 자매가 이모(李某)가 되는 일, 교사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갑질 학부모들과 왕의 DNA를 주절대는 고위관리, 후쿠시마 핵 오염수를 대비해 소금을 사재기하는 사람들 등은 뜬 소문과 함께 하루 하루 살아가는 국민들에게는 피곤함만 주는 주제 파악 못하는 이야기이다.

신약 성경 요한복음 8장 7절에는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는 군중들을 향해 예수 스리스도는 “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한다. 다른 사람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 자신을 되돌아 보라는 말이다. 마태복음 7장 5절에서도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라고 한다. 우리 속담에 “남의 눈에 티끌은 보면서 제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한다”와 같은 의미이다. 현대어의 사자성어 “내로남불”이다. 자신에겐 무한대적 관용으로, 타인에겐 무관용의 태도이다.

모두 분수를 모르는 행동이고, 푼수 같은 사람이며 주제 파악을 못하는 사람들이다. 늘어나는 헛소문에, 올라가는 물가에 나 자신이 그런 푼수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추석을 맞이하며 영글어가는 오곡백과처럼 실속있고 내실 있는 우리들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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