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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새가슴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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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10.09 15:0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우체통에 새가 알을 품고 있다. 해마다 요맘때면 딱새인지 곤줄박이인지 우체통 안에 집을 짓고 알을 낳는다. 우편물을 넣으면 새가 놀랄까 봐서 메모를 써서 우체통 앞에 붙여 놓았다. ‘새가 알을 품네요. 우편물은 현관 앞에 놓아 주세요.’ 메모를 본 우체부는 현관 앞에 우편물을 던져 놓는다.

새는 알을 품다가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쏜살같이 나와서 날아갔다. 아마도 놀라서 그런 것 같다. 문을 살살 열고 살금살금 소리 안 나게 걷는다고 해도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그렇게 놀랄 거라면 뭐하러 문 가까이 있는 곳에 집을 짓느냐고 푸념 아닌 푸념을 해 봤다.

택배를 보내려고 농협으로 들어서는데 내 차 뒤쪽에서 자전거를 탄 남학생이 빠르게 나타나더니 앞바퀴 쪽에 부딪히면서 쓰러졌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라 조심하며 천천히 차를 몰았는데 아이가 와서 부딪히는 순간 정신이 아득했다.

찰나의 순간에 그렇게 많은 생각이 오고 간다는 사실에 놀랐다. 차에서 내려서 학생에게 다가가니 벌떡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가려고 했다. 병원에 가자고 했더니 괜찮다며 아픈 데가 없다고 했다. 그래도 병원에 가보자고 몇 번을 이야기했는데 자전거를 타려고 했다. 자전거가 말을 안 듣는지 끌고 가려고 했다. “아가 체인이 벗겨진 게 아닐까.” 하니 말없이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학생이 가버리고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데 뭔가 영 찝찝했다. 학생하고 같이 부모를 만났어야 했는데. 전화번호라도 주고받았어야 했는데.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게 속이 상하면서 기분이 영 찝찝했다.

뒤늦게 후회를 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멍청했는지 모르겠고 답답하기까지 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학생이 아프지 말라고 기도만 했다.

다음날 경찰서에서 아이하고 부딪친 적이 있느냐고 전화가 왔다. 그렇다고 했더니 조사를 받아야 하니 한번 경찰서에 나오라고 했다. 알았다고 하고 나니 멍청하게 당황만 하고 아무런 조치를 하지 못한 내가 더욱 원망스러웠다. 그 아이를 찾기 위해 경찰서에 신고했으면 알 수 있었을 텐데.

집에 내려온 딸아이는 전화를 받더니 서울에 다녀온다고 했다. 가르치던 학생이 무단횡단으로 사고가 나서 세상과 작별을 했다. 자전거와 부딪힌 순간 왜 그 생각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자식이 하나, 둘인데 나로 인해 잘못되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더니 온몸이 경직되고 떨리기 시작했다.

경찰에게 그 학생 아빠의 연락처를 받았다. 다행히 많이 다치진 않았는데 조금 아프다고 했다. 걱정하지 말고 치료를 받으라고 하고 서로 연락하자고 했다. 그때부터 가슴이 더 콩닥거렸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걱정을 했다. 40년 넘게 운전했는데 사고는 처음이라 많이 놀랐던 것 같다. 강단지고 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인사사고라는 생각이 드니 온몸이 쭈뼛거렸다.

작은 사고에도 살이 떨리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마음이 아프고 정신이 없는데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세상의 나쁜 소식을 접할수록 그들을 이해하기 더 어려웠다. 열 달 품어 낳은 자식을 냉장고에 넣고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의 심장은 어떻게 생겼을까. 어린이들을 돌보는 어린이집 원장이 작고 여린 아기를 학대하는 심장은 괜찮을까. 아무런 일면식도 없던 지나가는 사람을 무차별 테러한 사람은 어떻게 잠을 잘 수 있을까. 이렇게 작은 사고에도 가슴이 콩닥거리고 온몸이 경직되는 것 같은데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는 게 가능할까.

지인의 아들이 낸 교통사고로 아기가 다시 올 수 없는 세상으로 갔다. 그 후 가해자가 된 아들의 삶은 황폐해지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지인은 아들에게 기도하며 참회하고 아가의 극락왕생을 빌라고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조금씩 죄책감에 벗어나서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자전거와 차가 부딪치면 무조건 차의 과실이라 한다. 누구의 과실이 문제가 아니고 다친 학생의 걱정이 전신을 짓누른다. 그 자리에서 연락처를 주고받았거나 경찰서에 연락하고 보험회사에도 전화해야 했다. 당황한 나머지 아무것도 못 했다는 어리석음이 이렇게 괴롭고 힘들 줄 몰랐다. 그 학생에게 보상을 해 주었다는 보험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 일이 원만하게 해결되었는데도 아직도 가슴이 뛴다. 나이 들면서 새 가슴이 된 건지 심장이 쪼그라든 건지 모르겠다.

모든 집안일을 혼자 짊어지고 씩씩하게 살아서 놀라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 남편도 딸도 사고 소리를 듣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마음 여린 두 사람이 나보다 더 힘들어 할 것 같아서 힘들게 버티고 있음을 말을 하지 못했다. 친한 친구같이 매일 통화하는 맏동서에게 말했더니 놀란 가슴은 그냥 두면 병이 된다면서 약을 잔뜩 사 왔다.

누구에게도 피해도 주지 말고 살자고 했는데 사람을 다치게 했다는 사실에 힘이 빠진다. 아직도 안정되지 않은 심장은 새가슴이 되어 여전히 콩닥거렸다.

내가 누군가에게 피해 주지 않기. 내 말이 누군가의 가슴에 비수가 되지 않기. 아기를 본다는 핑계로 멈추었던 기도를 시작하며 부처님께 합장하며 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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