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문화속으로] 소신공양(燒身供養)

이혜숙 수필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24.01.01 11:17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요즘은 까마귀 고기를 먹었는지 자꾸 잊어버린다. 냄비에 음식을 올려놓고 데우다가 냄새가 나서 주방으로 뛰어가 보니 연기가 풀풀 난다. 가스를 끄면 될 것을 냄비 뚜껑을 맨손으로 열려고 하다 엄지와 검지를 데고 말았다. 금방 물집이 생기더니 부풀어 올랐다. 욱신거리며 아프다.

티브이에서 자승스님의 소신공양 뉴스다. 작은 데임에도 이렇게 호들갑스럽게 아프다고 울상을 지었는데 당신 스스로 몸을 살라 공양을 했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오래전에 읽었던 등신불 생각이 났다. 인터넷을 뒤져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만적 스님의 소신공양한 뜻은 자승스님과 다르겠지만 평범한 사람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다.

‘법사 스님과 공양주 스님 두 분만을 모시고 취단식(就檀式)을 봉행했다. 먼저 법의를 벗고 알몸이 된 뒤에 가늘고 깨끗한 명주를 발끝에서 어깨까지(목 위만 남겨놓은) 전신을 감았다. 그리고 단위에 올라가 가부좌를 개고 앉아 두 손을 모아 합장을 올렸다. 그리하여 그가 염불을 외우기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곁에서 들기름 항아리를 받들고 서 있던 공양주 스님이 그의 어깨에서부터 기름을 들어부었다. 기름을 다 붓고 취단식이 끝나자 법사 스님과 공양주 스님은 합장을 올리고 그 곁을 떠났다. 기름에 전 만적은 그때부터 한 달 동안 단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가부좌를 갠 채, 합장을 한 채, 숨 쉬는 화석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레에 한 번씩 공양주 스님이 들기름 항아리를 안고 장막 안으로 들어오면 어깨부터 다시 기름을 부어주고 돌아가는 일 밖에 그 누구도 이 장막 안을 엿보지 못했다. 이렇게 한 달이 찬 뒤. 이날의 성스러운 불공에 참여하기 위하여 산중의 스님들은 물론이요, 원근 각처의 선남선녀들이 모여들어 정원사 법당 앞 넓은 뜰을 메꾸었다.

대 공양(燒身供養)은 오시 초에 장막이 걷히면서 시작되었다. 오백을 헤아리는 승려가 단을 향해 합장하고 선 가운데 공양주 스님이 불 담긴 향로를 받들고 단 앞으로 나아가 만적의 머리 위에 얹었다. 그와 동시에 그 앞에 합장하고 선 승려들의 입에서 일제히 아미타불을 부르기 시작했다.

만적의 머리 위에 화관같이 써진 향로에서 점점 더 많은 연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오랫동안 정진으로 말미암아 거의 화석이 되어가고 있는 만적의 육신이지만, 불기운이 그의 숨골(정수리)을 뚫었을 때는 저절로 몸이 움칠해졌다. 그때부터 눈에 보이지 않게 그의 고개와 등 가슴이 조금씩 앞으로 숙여 갔다.’ 등신불의 의식에 대한 것만 옮겨보았다.

만적 스님은 인간의 고뇌를 시작으로 불교에 입문해서 금불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지만 소신공양을 한 많은 스님은 지금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되어 있을까.

오래전에 티브이에서 등신불을 극으로 본 적이 있었다. 소신공양 의식을 하기 전 온몸에 흰 천으로 감고 기름을 붓는 장면을 보고 놀란 나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인간으로서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중생인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며칠 전에 칠장사에서 총무원 원장을 두 번이나 역임한 자승스님이 소천하셨다. 처음에는 불이 나서 잘못된 줄 알았다. ‘생사가 없다 하나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사라지는구나.’ 涅槃偈가 발견되고 불교종단을 걱정하는 말씀을 남겼다. 경찰에게 남긴 유서에는 스스로 한 행위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소신공양이다. 아니다를 두고 말들을 한다.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마음이 아프다. 물론 소신 발언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걸 버리고 출가한 스님들이니만큼 모든 걸 포용하고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불법을 따르고 바르게 살기 위해 힘쓰는 불자들이 많다. 비록 실천은 미숙하지만 나도 노력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누구든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나보다 남을 더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법랍이 50년이 넘고 세수가 이제 70인데. 공양하는 뜻의 유무를 떠나 스님이 너무 일찍 가신 게 아닌가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성불합시다.’란 말 대신‘부처님 법을 전합시다.’라는 말로 불자들을 이끄신 분. 속마음이야 모르겠지만, 소신공양하신 의도는 궁금하다.

칠장사는 가끔 가서 예불을 드리러 가는 곳이다 보니 집에 있어도 경내가 속속들이 보이는 그런 곳이다. 칠장사 요사채가 오래되고 낡은 건물이라서 그곳을 택하신 것일까. 그곳을 소신공양의 장소로 하고 상좌들에게 2025년까지 꼭 요사채를 지으라 당부하신 뜻을 내 나름대로 해석해봤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필수적으로 하는 게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한다. 일찍 가고 늦게 가는 차이일 뿐. 조금 일찍 열반에 드셨어도 남은 사람들의 가슴에 심금을 울린 한마디가 있는 한 함께 사는 게 아닐까.

아침에 일어나 ‘法性偈’를 독송한다. 스님의 왕생극락과 불자들이 법에 의지해서 바른길을 가길 바라면서.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