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 저녁 그래도 겨울인지라 단단히 채비하고 현장에 갔다. 평소에는 입지 않는 내복을 껴입고 목도리도 두툼하게 둘렀다. 현장에 도착하니 이미 행사를 주관하는 단체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지역 주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쪽 무대에서는 전통악기 사물놀이패의 흥겨운 연주가 한창이었고 장작불을 지핀 난로 근처에는 고구마와 가래떡이 모락모락 익어가고 있었다. 뜨끈한 국물이 일품인 어묵탕, 추운 날 밖에 서서 마시기에 적격인 커피와 차도 준비되어 있었다. 한 코너에서는 “새해 소원 쓰기”도 인기가 아주 좋았다.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하자 주관단체 직원들도 덩달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많은 인파였다. 아마도 춥지 않은 날씨와 오랜만에 열리는 행사라서 많이 온 것 같았다. 가만히 서 있기가 민망해 “새해 소원 쓰기” 코너를 도와주었다. 함께 활동하는 단체이니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인지라 스스럼없이 함께 무리 속 일원이 되었다.
사람들이 다가와 궁금해하면 설명해 주고 카드와 펜을 주어 새해 소원을 적어 행사장에 마련된 장소에 카드를 걸어두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카드에 소원을 적었다. 엄마와 딸로 보이는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쓰는 글도 있고 근처 학교 학생들로 보이는 푸릇푸릇한 청소년 몇 명이 몰려와 학업에 관한 고민을 적기도 했다. 키가 아주 작은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한 꼬마는 ‘엄마, 아빠 사랑해요.’를 적어 뒤에 서 있는 부모님을 행복하게 하기도 했다. 저마다의 이야기로 카드를 메워 나가는 모습들이 여간 진중해 보이지 않았다. 더러는 이국적인 모습의 외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무슨 행사인지 궁금해서 와 봤다면 소원 카드도 모국의 언어로 써 내기도 했다. 모습은 달라도, 살아온 환경은 달라도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은 누구나 다 한결같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저마다의 새해 소원 쓰기 카드의 열기에 힘입어 나도 한 장을 써서 줄에 걸었다.
밤 12시 정각이 되자 지역의 각계각층 주민이 참여하는 타종식이 시작되었다. 저마다의 손에 들려진 촛불을 바라보며 가는 해를 보내고 오는 해를 맞이하는 종소리가 밤하늘을 타고 멀리 울려 퍼졌다. 저마다 바라는 일들이 모두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의 종소리는 유난히 맑고 청아했으며 깊었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더없이 가벼웠다.
갑진년, 드디어 푸른 용의 새해가 밝았다. 더불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365일이라는 선물이 쥐어졌다. 가족 모두 저마다 하는 일들이 모두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친정 부모님이 연로하신데 새해에도 지난해 못지않은 건강으로 자식들의 삶에 자애로운 울타리로 계셔주었으면 좋으리라. 아들이 이제 학생의 신분을 모두 끝내고 사회로 나아가 홀로 우뚝 설 준비를 하고 있다. 온실 속 화초처럼 곱게만 자란 녀석이 어떤 바람에도 휘둘리지 않고 사회의 일원으로 우뚝 서길 바란다. ‘언니, 동생’하며 가까이 지내는 이웃사촌 한 명이 지난해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는데 정신적으로 많이 약해져 있다. 그녀가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단단하게 속을 키워 예전의 씩씩했던 모습을 되찾기를 소망한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하루하루 현재를 채워 행복한 미래를 꿈꾸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