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문은 화재 시 복도나 계단, 출입구 등으로 연기·불꽃이 번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 설치되는 시설로,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은 방화문이 언제나 닫힌 상태를 유지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를 어기고 인위적인 방법으로 방화문을 고정해두다가 적발되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나 벌금이 부과되지만, 아파트·기숙사·다세대주택 등 공동주택 현장에서는 대체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10일 찾은 서구의 한 아파트. 항시 닫혀 있어야 할 방화문은 열려 있거나 닫히지 않게 시건장치로 고정돼 있었고, 일부는 끈이나 케이블타이 등으로 묶여있었다
중구지역 아파트도 마찬가지. 3개 동을 살펴보니, 겹겹이 접은 종이나 나무조각으로 문을 고정해둔 층들이 목격됐다. 더욱이 유일한 대피 통로인 계단실은 유모차·자전거부터 대형 화분까지 개인 창고를 방불케했다.
각 방화문과 엘리베이터에 재활용품이나 자전거 등을 무단 적치해 화재로 인한 비상시 닫힘 기능을 방해할 경우 즉시 처벌하겠다는 공고문이 게시돼 있었지만, 이 또한 무용지물이었다.
해당 아파트 관리인은 "특히 여름에는 환기나 더위 등의 이유로 방화문을 열어두는 경우가 매우 많다"며 "안내문도 보내고 수시로 점검도 하지만, 매일 확인할 수가 없어 관리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최근 3년간 대전지역 공동주택 화재는 2021년 85건, 2022년 99건, 2023년 83건 등 267건으로, 다수 사상자는 연기 흡입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화문 등 피난시설의 관리 상태가 중요한 이유다.
실제 지난달 25일 서울 도봉구의 한 23층짜리 아파트 3층에서 불이 나 대피하던 4층 거주자와 10층 거주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불이 빠르게 번진 원인으로 열려있었던 방화문이 지목됐다. 산소 공급이 원활해져 연소 속도가 빨라졌고, 결국 대피 시간을 놓친 것.
지난 2018년 고령자를 중심으로 200명 가까운 사상자를 낸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건에서도 방화벽의 부재가 피해 확산의 주원인으로 꼽혔다.
이에 전문가들은 "건축물 내 대피로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부분인 만큼, 시민들의 불법행위 인식 확대를 위한 교육과 홍보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부 소방서들도 대피로 확보에 대한 경각심과 안전의식을 높이기 위해 불법행위 신고포상제를 운영 중이다. 신고 내용은 △피난·방화시설 폐쇄(잠금 포함) 및 훼손 △피난·방화시설 주변 물건 적치 등으로, 신고자에게는 5만원이 지급된다.
둔산소방서 관계자는 "비상구와 방화문은 우리 가족과 이웃을 지키는 생명의 통로"라며 "폐쇄 등 불법행위가 근절될 수 있도록 적극 동참해 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