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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마음속 어둠 걷어내는 한줄기 빛 전하는게 소명"

스테인드글라스 거장, 빛의 화가 김인중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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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4.01.28 13:59
  • 기자명 By. 황천규 기자
▲ 김인중 신부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황천규 기자)
▲ 김인중 신부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황천규 기자)

“즐겁게 살지않는게 죄악, 힘든 고통도 다 지나간다”
“시기와 질투 만연한 세상, 사랑 결핍되면 불행해져”
“그간 누렸던 축복 사회 환원, 지역상생프로젝트 추진"

[충청신문=대전] 황천규 기자 = 5남 3녀, 8남매의 장남으로 한때 배우와 운동선수를 꿈꾸던 소년은 틀에 박힌 것을 싫어했다. 어찌보면 예술가로서의 삶은 이때부터 태동했는지 모른다. 서울대 미대와 대학원를 나와 대한민국 미술대전서 대상도 받았다. 미술가로서 전도유망했던 청년은 돌연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왜 그랬을까? “신학생을 지망하는 아이들 배움터인 소신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면서 성직자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완고한 집안을 생갈할 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프랑스행을 선택했고 스위스 후리브루대학, 파리가톨릭대학서 수학하다 1969년 프랑스 도미니크 수도회에 입교한다. 성직자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6년간 그렇게 한 분만을 섬기며 청렴하고 고된 생활을 이어갔다. 1974년 사제서품도 받았다. 어떻게 보면 이 기간이 세상과의 적극적인 소통의 단초가 됐는지도 모른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예술가와 엄격한 성직자의 길이 상충되는 것 같지만 그는 융합을 이끌어냈다.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는 세계적인 스테인드글라스 거장 김인중 신부 얘기다

그가 스테인드글라스에 천착하는 이유는 뭘까. 어찌보면 단순하다. 누구든 성당에 한 두 번은 가봤을 것이다. 울긋불긋하게 채색된 창으로 들어오는 오묘한 빛이 은은하게 실내를 비추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온갖 상념이 스프레이처럼 허공으로 사라진다. 빛의 성서로 불리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세상에 안식을 전하는 것이다.

김 신부는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한 줄기 빛은 희망이다”며 “마음속 어둠을 걷어내는 일이 성직자로서, 예술가로서 나의 소명”이라고 말했다.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예술뿐이라는 게 그의 철학이다. 혼탁한 세상일수록 마음의 빛을 챙기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김 신부를 지난 22일 청양에 있는 빛섬아트갤러리에서 만났다.

▲ 빛섬갤러리 외부 전경 (사진=황천규 기자)
▲ 빛섬갤러리 외부 전경 (사진=황천규 기자)

인자하고 서민적인 웃음이 백제의 미소를 빼닮았다. 김 신부의 고향이 부여라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빛섬은 그의 호다. 그의 작품 하나 하나가 빛을 비추는 섬이라는 뜻이 담겼다. 유럽 수많은 곳에서 빛을 비추던 섬이 국내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40년생, 80대라는 삶의 나이테가 어투에 그대로 묻어났다, 조용하면서 부드럽지만 은근히 힘이 실려있다. 하루하루 의미를 부여하며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며 열심히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는 김 신부는“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악이다. 견딜수 없는 극한의 고난도 다 지나간다”며 혼탁한 세상을 살아내느라 힘들고 지친 이들에게 위로를 전했다.

▲ 작품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카페 내부 (사진=황천규 기자)
▲ 작품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카페 내부 (사진=황천규 기자)

그의 작품세계 원천은 고향 백마강이다. 속도감있게 표현되는 붓의 운필력이 흡사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을 연상시킨다. 특히 유화를 통해 구현한 단색 작품은 동양화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프랑스 생 줄리아 성당, 사르트르 성당을 비롯해 중동, 아프리카 등 세계 40여곳에 설치된 그의 작품은 지구촌에 안식을 선사하고 있다. 1973년 프랑스 첫 전시회 이후 전 세계에서 200여차례 전시회도 가졌다. 김 신부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 훈장 ‘오피시에’를 받았고 2021년 스위스 르 마뎅지에서 ‘세계 10대 스테인드글라스 대표작가’로 선정되는 영예도 누렸다. 세계적인 거장 샤갈, 마티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 르 마뎅지 ‘세계 10대 스테인드글라스 대표작가’ 선정.
▲ 르 마뎅지 ‘세계 10대 스테인드글라스 대표작가’ 선정.

이렇게 50여년을 프랑스 등 유럽을 주무대로 작품활동을 하며 세계적 명성을 누리던 그가 2022년 카이스트 초빙석좌교수로 귀국하면서 한국에 정착했다. 학생들과 함께 고민하며 김인중홀을 작품으로 수놓았다. 더불어 빛섬아트갤러리도 청양에 문을 열었다. 그가 동생 김억중 한남대학교 건축학과 명예교수와 함께 추진하는 지역상생프로젝트 1호다. 프랑스의 조그만 소도시 브리우드가 그의 작품으로 인해 유명관광지가 된 것에 착안했다. 12세기에 지어진 생 줄리아 성당에 설치된 그의 작품을 보려고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도시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지방소멸이 화두가 된 요즘. 김 신부는 그의 작품을 통해 스러져가는 지방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한다. 1호 갤러리가 자리잡은 청양을 전국에서 관람객들이 찾는다. 이를 시작으로 논산, 부여 등에 2, 3호 등을 계획하고 있다. 1호, 2호, 3호 등 ‘빛섬 벨트’를 구축해 관람객들이 단지 스쳐가는 관광지가 아닌 머무는 명소로 만들면 지역경제가 살아날 것이다.

▲ 카이스트 학술문화관 천장에 설치된 작품 (사진=황천규 기자)
▲ 카이스트 학술문화관 천장에 설치된 작품 (사진=황천규 기자)

김 신부의 고향 부여를 비롯한 인근 지역에 대한 애정을 엿볼수 있다. 김 신부는 “시기와 질투, 경쟁이 만연한 사회일수록 사랑이 중요하다”면서 “불행은 사랑의 결핍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지역상생프로젝트는 고향사랑의 한 방편이다.

이런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프랑스에 K-아트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세계화를 위한 인큐베이터다. 한국의 미술, 음악 등 예술이 이 곳에서 활짝 꽃 피울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젊은 작가들이 이 곳에서 전시, 공연 등을 열며 유럽작가들과 교류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김 신부는 “제가 살면서 받은 무한한 축복을 사회에 돌려줘야 하는 게 숙명으로 다가왔다”며 “남은 생을 봉사하며 살아가려 한다”고 했다.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도시 재생을 통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봉사다.

▲ 작품 앞에 선 김인중 신부 (사진=황천규 기자)
▲ 작품 앞에 선 김인중 신부 (사진=황천규 기자)

“대학시절 식사를 할 때보다 끼니를 거르던 횟수가 더 많았다”는 김 신부. 일제강점기와 6·25, 4·19등 굴곡진 역사를 온몸으로 체험한 그가 지역상생 프로젝트에 애착을 갖는 배경이다. 쇠태해가는 소도시를 돕는 것이, 그 곳의 구성원들이 행복해지도록 하는 것이 그가 추구하는 사회공헌이다.

미술사가인 웬디 베케트 수녀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천사들이 그림을 그린다면 김인중 신부 그림과 같을 것이다.”

2시간 가까운 인터뷰를 마치고 갤러리를 나서는데 오전부터 오락가락하던 함박눈이 팝콘처럼 쏟아졌다. 다툼과 갈등으로 피곤한 세상을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을 태세다.

김 신부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국장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라고 했다. 강추위에 칼바람까지 불어 옷깃을 여미였지만 마음이 훈훈해졌다. “신부님, 앞으로 할 일이 태산같으니 건강하십시오”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발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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