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1시경 대전 서구 둔산동의 한 편의점. 고등학생 남짓 보이는 손님이 타이레놀 2개를 집어들고 계산대로 향하자 점주 이모(37)씨는 아무런 설명과 제재 없이 계산을 마친 뒤 약을 건넸다. 이모씨는 "상비약은 한 사람당 한 개씩만 판매해야 하는 걸 알고 있다"면서도 "별도의 단속도 없고 매출도 올려야 해 모른 척 팔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 지역 내 일부 편의점이 안전상비약 판매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어 시민들의 약물 오남용이 우려된다. 이에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도와 단속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안전상비의약품 약국 외 판매 제도'는 지난 2012년 보건복지부가 약국이 문을 닫는 늦은 시간이나 명절 등 휴일에 상비약을 구매할 수 없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약사법을 개정하면서 시행됐다.
이에 따라 상비약을 판매하는 편의점 업주와 직원은 대한약사회 주관 교육을 수료해야 하며, 무분별한 약품 구매 및 판매로 인한 오·남용을 막기 위해 규정한 '1인 1개' 판매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위반 시 약사법에 따라 최대 3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연 3회 이상 적발되면 의약품 판매 등록이 취소될 수 있지만, 일부 편의점은 이를 무시한 채 각종 꼼수를 부리며 상비약을 판매하고 있다.
실제 이날 방문한 3개 편의점에서 두 개 이상의 상비약 구매를 시도한 결과, 각기 다른 포스기 두 대에 약품을 찍어 분할 결제하거나 한 개의 포스기에서 두 번의 결제를 요구하는 직원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편의점 가맹본부가 2개 이상의 동일 안전 상비약을 구매할 수 없도록 구축한 POS 시스템도 소용없는 셈이다.
이 같은 의약품 취급 편의점의 관리 부실과 그로 인한 오남용 위험을 이유로 대한약사회는 잊을만하면 화두에 오르는 '편의점 상비약 품목 확대'에 강력 반대하고 있다. 약 판매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만큼, '편의성'보다 '안전성'이 최우선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한약사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 시민단체가 전국 편의점(1050개)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비약을 판매하는 편의점 10곳 중 무려 9곳이 한 번에 두 개 이상 판매하거나 사용 시 주의사항을 게시하지 않는 등 판매준수사항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지자체의 정기 점검은 인력부족 등을 이유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시 관계자는 "대전 전체 편의점 중 1803개소가 해열진통제 5종과 감기약 2종, 소화제 4종, 파스 2종 등 13개 품목을 판매하고 있다"며 "단속은 각 자치구 보건소에서 자체적으로 계획을 세운 후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구·대덕구 보건소 관계자는 "의약품 판매 업소는 많은데 점검 인력은 1명 뿐이라 편의점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기엔 어렵다"며 "관련 민원이나 개소 및 장소 이전 신고가 들어오는 곳 위주로 점검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