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문화속으로] 방학

이혜숙 수필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24.03.11 17:0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손녀가 봄 방학을 했다. 손녀는 어린이집 안 가도 된다고 신난다고 하더니 저녁 늦게 자고 아침 늦게 일어났다. 낮에는 놀아달라고 떼를 쓰고 밖에 나가자고 보채며 점점 요구사항이 늘어났다. 아이들 놀이터로 좋은 곳을 알아보고 가려고 했더니 때아닌 눈이 내려 기온이 차가워졌다. 추운 날씨의 나들이 하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고생이다 싶어 포기했다.

때맞춰 의사들도 파업이다. 어느 유명인은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에 깁스해야 하는데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서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겨우 수술했다고 했다. 그 소식에 차를 가지고 멀리 가는 걸 피하게 되었다. 혹시 모를 사고에 이동이 겁이 났기 때문이다.

아흐레가 이처럼 길게 느껴질 줄이야. 심심해서 몸부림치는 아이를 데리고 동생 집으로 갔다. 동생 집으로 가는데 고속도로에 차가 밀린다. 이 시간은 밀릴 시간이 아닌데 왜 그러지. 조금 더 가니 5중 충돌 난 사고 현장이 보였다. 사람은 안 다쳤을까. 이 상황에서 다치면 안 되는데. 괜히 길을 나섰나 하는 마음에 걱정도 되었다. 더욱 조심조심 운전하며 어렵게 동생 집에 도착했다.

얏~호! 방학이다. 집에 오자마자 책가방 집어 던지고 등하교하는 부담에서 해방되었다는 생각에 그저 기쁘기만 했다. 어릴 적 방학이 되면 그날부터 책과는 이별. 산으로 들로 혼자 다니며 잘도 놀았다. 여름이면 뜰채로 개울에 가서 송사리를 잡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시원한 계곡으로 가서 졸졸 흐르는 물에 잠겨 있는 돌을 가만히 들춰보면 가재가 꼬물거렸다. 가지고 간 주전자에 잡은 가재를 넣어서 집에 오면 엄마는 무 넣고 보글보글 가재 매운탕을 끓여주셨다. 갈색이었던 가재는 익어가며 주황색으로 변하면 다 익은 것이다. 지금은 엄마의 손맛을 볼 수 없지만, 그때 먹었던 가재 요리는 일품이었던 것 같다. 먹을 것이 귀한 때라 가재 매운탕은 더없이 맛있는 특식이었다.

우리는 읍내에서 살다가 희생정신이 뛰어난 아버지 덕분에 시골로 이사를 왔었다. 너무 낙후된 곳이라 아버지가 그곳의 상황을 좀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읍내까지 십여 리. 내 친구들은 모두 읍내에 있는데, 몇 집 살지 않는 시골에는 친구도 별로 없어서인지 혼자서 놀아야 했다
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맹랑한 아이는 혼자 십리 길을 걸어가서 친구들과 놀았다. 해가 질 녘이면 아버지가 오셔서 나의 손을 잡고 집으로 오곤 했다. 엄마는 아버지를 귀찮게 한다고 야단하셨지만, 친구가 없고 심심해서 혼자서 먼 길인데도 잘 다녔다.

나의 방학은 즐거웠는데 손녀의 방학은 나의 노동의 강도를 더하게 했다. 다행히 남편과 함께 육아하니 힘은 덜 들어서 조금은 편한 느낌이다. 자상한 할아버지는 비닐하우스에 허수아비를 만들어 놓고 아이에게 흙장난도 하게 하고 쪽파를 뽑아 다듬는 일을 놀이로 한다. 아이들이 시골에서 살면서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은 정서적으로 참 좋은 것 같다. 도시에서는 모래놀이도 돈 주고 한다는데. 손녀는 시골 아이답게 서울 가면 차가 많아 너무 시끄럽다고 귀를 막는다. 사람들이 많으면 너무 힘들다는 우리 아가. 흙냄새를 좋아하고 풀을 뽑기도 하며 자연과의 생활을 즐거워하는 데 서울에 가서 잘 살 수 있을까. 아직 오지도 않는 내일을 걱정하는 어리석은 할머니다.

봄은 온 것 같은데 아직은 조석의 기온 차가 높다. 따뜻해지면 마당에 나가서 실컷 뛰어놀게 해야 할 텐데 미세먼지가 또 걱정이다. 내가 예민한 건지 다 그렇게 사는 건지 걱정 속에 있는 나는 날마다 살얼음판 같다.

혼자 산에 가서 놀아도 계곡에 가서 가재를 잡아도 겁이 나지 않았던 시절이 그립다. 개울물에 발 담그고 뱀이 지나는 모습을 보면서도 잠시 겁이 났지만 도망가는 뱀을 보면서 아무렇지 않게 물가에서 놀았었다.

요즘은 아이 혼자 밖에 내보내기가 무서운 세상이다. 각종 안 좋은 소식들로 아이를 과보호하게 하는 건 아닐는지. 사람이 겁나는 이 시대에 사는 아이들. 신나게 뛰어놀고 마음껏 꿈을 펼치며 살아야 하는데 안타깝다. 바보 할머니는 아직 어린 손녀가 헤쳐 나갈 미래를 걱정한다.

봄에는 유난히 바람이 잦다. 창밖을 보니 나무들이 바람이 심하게 흔들린다. 손녀는 밖에 나가자고 조르는데 콧물이 줄줄 흐르는 손녀를 데리고 밖에 나가지 못하고 유튜브를 보게 했다. 유튜브를 보더니 심심해서 몸을 뒤틀던 아이가 신나는 얼굴이다.

요즘 아이들은 미디어 사용을 잘한다. 내가 컴퓨터 배울 때는 힘들게 배웠는데 요즘 아기들은 보면 바로바로 습득했다. 세상이 변했는데 책만 보라고 강요를 못 한다. 동영상에서 동화도 읽어주고 바른 학습 방법도 알려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나의 방학은 언제쯤 올까. 우리 손녀가 학교에 가려면 아직 4년이나 남았는데 그때는 나의 방학이 올까. 어쩌면 또 다른 이유로 내 방학은 무기한 연기될지도 모르겠다. 다리 떨리지 않을 때 여행을 많이 하려 했는데 점점 다리가 떨리는 것 같아 마음이 우울하다. 완전한 방학이 올 때를 위해서 열심히 건강이나 지켜야겠다. 멋진 방학 계획을 세우면서.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