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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너를 만나러 가는 길

강희진 음성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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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4.03.18 15:0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강희진 음성예총 회장
금요일을 기다리는 동안 많이 설레었다. 너와 첫 대면이기도 하거니와 늘 그리워만 하다가 찾아가는 것도 20년 가까운 세월이니 왜 두근거리지 않았겠어. 멀리 외국에 있는 것도 아니고 길어야 자동차로 3시간이면 가는데 왜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왜 그동안 가지 못했을까? 자책도 해 보았다.

너를 만나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바쁜 일상에서도 웃음이 나왔고 아직 여기는 추위가 물러가지 않았는데 너는 피어났을까? 하는 생각으로 조바심도 났지. 날씨를 매일 체크 하고 남녘의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드디어 너를 만나러 가는 날 남쪽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도 온통 너만 생각했어. 휴게소를 들리는 기사분께 빨리 가자고 재촉을 했다가 일행들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어. 시간을 다투는 것도 아닌데 쉬엄쉬엄 가자고 그래도 자동차 속도계에 자꾸 눈이 갔단다.

남쪽으로 갈수록 낮은 산등성과 들판에는 벌써 푸릇푸릇한 마늘이 길게 자라고 있더라. 보리밭도 푸름을 더해 가고 있었고 남도 특유의 대나무밭도 길가에 펼쳐졌더구나. 어린 시절 따뜻한 햇볕과 부모님의 눈길을 받으며 뛰어놀았던 고향 집이 생각났다. 고향마을에도 복숭아꽃이 봄이면 꽃 대궐을 이루고는 했는데 이제 또 언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코끝이 찡했어.

드디어 수많은 인파 속에서 너와 마주했다. 오래전 서편제 영화를 재미있게 본 후 후속편으로 나온 영화가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이었다. 영화관에서 화면 가득 펼쳐졌던 매화꽃 풍경에 사로잡혀 비디오를 빌려다가 몇 번을 돌려보았지. 매화꽃이 눈처럼 날리는 장면에 주인공 오정혜의 구슬픈 판소리가 더해져 가슴을 저미게 만들었던 장면이었어. 그 꽃밭에서 난 오래오래 머물 고는 했지.

그때 영화에 나오는 그 장면이 그래픽 처리한 것인 줄 알았어.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 우리나라에는 없을 거라 생각했거든. 그런데 광양 매화 마을이라고 했고 그 후로 언젠가는 꼭 보러 가겠다고 했던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왜 올해 유난히 꽃을 보고 싶었을까? 전국 꽃들의 개화 시기에 맞춰 따라가 보자고 생각했거든.

맞아 조금 늦었더라. 이미 너는 절정을 넘기고 있었어. 그 모습이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화무십일홍이구나 하는 의미심장한 문구도 생각이 났지. 그래서 엇댔냐고?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끝이 까맣게 탄 새 풀잎’ 시로 대신하고 싶어.

봄을 느껴보고 싶고, 봄을 보고 싶습니다.
푸른 눈을 틔우는 나뭇가지 끝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고, 나물을 뜯어보고 싶고, 푹신푹신한 좁은 논두렁길을 천천히 걷고 싶고, 논둑 밭둑에 돋아나는 풀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내 뺨에 부는 감미로운 봄바람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고, 치마폭을 나부끼며 마을을 벗어난 흙길을 해 질 때까지 걷고 싶고, 양지바른 언덕에 앉아 해바라기를 해 보고 싶습니다. 시냇물이 흐르는 강가에 버들강아지 부드러운 솜털을 가만히 만져보고 싶고, 마른풀을 태운 강변, 새까만 재 밑에서 돋아나는 끝이 까맣게 탄 풀잎들과 파란 몸을 보고 싶고, 얕은 강물로 나온 잔고기 떼들의 희고 반짝이는 새 몸을 보고 싶습니다.

이 모든 그것 중에서, 그 모든 그것 중에서
실은
당신이
제일 많이
보고 싶습니다.

어쩌면 너를 핑계 삼아 끝이 까맣게 탄 풀잎들과 파란 몸을 보고 싶었던 것 같아. 논둑 밭둑에 돋아나는 풀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도 같아. 봄을 보고 싶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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