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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의 세계관과 자유·독립 (2)

홍만표 충남도 국제통상과장·지역정책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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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11.04 18:07
  • 기자명 By. 충청신문
홍만표 충남도 국제통상과장·지역정책학박사
홍만표 충남도 국제통상과장·지역정책학박사

윤봉길 스피릿의 승화 문제는 평화를 위하여 어떻게 시민 연대를 세계적 차원으로 확산할 것이냐다.
일단, 시민 연대로 세계화의 방정식을 새롭게 짜기 위해서는 새로운 개념과 말을 찾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스위스의 언어학자인 패르디낭 드 소쉬르는 ‘언어는 하나의 사회적 사실(fait social)’이라고 강조했듯이 그것은 세계를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별자리를 모르는 자가 밤하늘을 아무리 봐도 곰과 사자, 백조는 존재하지 않듯이 현상을 규정하는 언어가 없으면 존재도 없다는 게 소쉬르의 주장이다. 당연하다 믿어왔던 기존의 습관과 생각에 균열을 내며 솟아나는 언어들이 바로 새로운 변화의 전령이다.

나는 이전부터 이 세상에서 전염병보다 두렵고 핵무기보다 강력한 것은, 바로 ‘對話라는 무기’라고 주장해 왔고, 새로운 세계화와 관련해 그동안 ‘민제(民際)’라는 언어를 사용해 왔다.

‘민제’의 실천적 의지인 새로운 게마인샤후트적인 사고가 윤봉길 스피릿 속에도 깃들여 있는 듯하다. 민제란 개인과 개인, 개인과 공동체, 공동체와 공동체 등 다양한 국제 교류를 통하여 異文化를 이해하려는 대화공동체로 근래 급격하게 하이퍼 커넥티드 소사이어티로의 전환과정에 있어서 개별과 주민(공동체)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게마인샤프트 사회의 실천적 행위이다.

모든 것을 국익으로 환원하는 국가주의의 언어로는 시민 사회의 다양하고 무한한 관계의 가능성을 드러낼 수 없으며, 모든 것이 이윤으로 환원되는 자본주의의 어법으로는 인간관계를 맺어주는 무형의 소중함을 포착할 수 없다.

첨예한 정치 상황을 뒤로한 끊임없는 민간에 의한 국제교류야말로 진정한 ‘민제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民際’로 풀어보려 한다. 이러한 민제의 실천은 오래된 미래의 ‘동아시아 동질성‘에서 흘러나오는 무의식이 왕래하는 길목에서, 적대적 의존관계가 있는 국가 간의 닫힌 관계를 열어줄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민제라는 문화적 행위는 정치를 능가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어느 때 보다 언어의 감수성을 높여낼 것을 희망한다. 포스트 코로나시대를 향하는 민제라는 열차에 몸을 싣고 오래된 미래라는 레일위를 달리면서 새로운 희망을 주조(鑄造)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굳어진 우리의 생각과 믿음, 언어를 뚫어내는 비용을 기꺼이 치러야 한다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작은 삶의 개개인들과 국가라는 이름의 큰 권력은 하나의 대지에 두 개의 뿌리가 내린 나무와 같은 존재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 개인은 더 이상 이방인의 존재가 아니다 라는 것이다. 개인의 행복함을 추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문화 행위에 가깝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소함으로 관계를 맺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전환 시대의 개별적 행복은 ‘큰 권력과 작은 삶의 조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 할 수 있다.
이러한 조화야말로 윤봉길 스피릿의 근간이며 자유와 독립을 위한 세계시민연대까지 추구하려고 했던 것이었다고도 말 할 수 있지 않은가?

물화(物化)와 교환과 자조에만 골몰하는 세계를 넘어 연대와 실천의 열린 지평으로 나아가는 길이 동아시아의 중심추인 옛 백제의 왕국이자 윤봉길 스피릿의 본향인 대한민국 충청남도에서부터 시작되기를 기대해 본다.

윤봉길 정신을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만일 그대가 자신의 가치를 즐기고자 한다면, 그대가 먼저 세계가 가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라는 언어를 빌려서 해석한다면, 개인의 삶의 행복을 죽음으로라도 지키려 했던 생과 사의 합체였고, 국가의 자유와 독립은 개별적 자유와 독립을 통한 개인의 행복이 전제되기 위한 필요불가결한 조건이었던 것이었다.

결국 개인의 주체적 삶을 통하여 민제와 공동체 의식, 그리고 세계시민연대와 함께 민족 단위로 근대적 新 전환 시대를 맞이하려고 했던 것이 윤봉길 정신이었다는고 조금은 거칠게 주장하는 바이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현재까지 줄곧 서울 효창동에서 살고 있다. 효창공원은 내가 어릴 때부터 청년이 될 때까지 줄곧 뛰어놀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백범 김구와 매헌 윤봉길과 함께 '삼의사'로 불린 이봉창·백정기 의사, 그리고 이동녕·조성환·차리석 의사가 묻혀 있고, 안중근 의사의 가묘도 있는 곳이다. 시민 사회가 주체가 되어 국가와 함께 개인과 국가의 자유와 독립의 聖地로 효창공원을 승화시켜야 한다고 의식의 행위를 해 보곤 한다.

그날 아침 김구와 맞바꾼 윤봉길 時計 속에 갖춰져 멈춰 버렸던 분침(자유)과 시침(독립)이 그토록 갈망하던 국가의 ‘자유와 독립’의 윤봉길 스피릿으로 남아 대한민국의 평화적 세계관이라는 視界도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와 함께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효창공원을 거닐 때마다 쉬지 않고 째각째각 하는 회중시계 소리가 들려 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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