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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조율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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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11.19 15:15
  • 기자명 By. 충청신문
한기연시인. 평생교육강사
한기연시인. 평생교육강사

모두들 바쁘게 걷고 있다. 그 속에서 혼자만의 여유를 누리고 주변을 볼 틈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사람들에 떠밀려 걸었다. 아침 출근 길 지하철 안은 그야말로 지옥철이었다. 손잡이를 잡지 않아도 앞, 뒤로 끼인 사람들 속에서 발이 바닥에 닿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지난 밤, 수업을 마치고 늦게 서울에 왔다. 아들집에서 하룻밤 자고 교육을 받으러 가는 길이다. TV로만 보던 서울의 아침 지하철 풍경을 마주하였다. 사람들 사이에 끼여서 자리를 잡은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구경하는 것도 지루하지 않아서 좋았다. 대부분이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남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못다 한 화장을 하는 젊은 여성도 보였다. 못 마땅하다기보다는 이해가 되었다. 치장을 해야 하는 여자들에게 아침시간은 다른 때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책을 보며 공부를 하는 학생도 보인다. 주어진 시간은 같은 데 사람마다 다르게 쓰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내게 있어 시간은 내리막길에 가속도가 붙은 것처럼 빠르게 움직인다. 누군가 나이만큼 시간은 속도를 낸다고 하더니 그 말을 체감한다. 만으로 40대를 고집했었는데 이제 정말 50대가 코앞이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가는 지 모르게 벌써 올해도 한 달 남짓밖에 안 남았다. 허투루 쓰지 않았는데도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많은 일을 해 왔다는 뿌듯함보다 하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가 더 크게 다가선다. 40대 중반을 지나면서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해 초조함이 생긴 탓이다.

군에 간 아들은 12월에 있는 휴가일정을 앞두고 전화를 자주 한다. 지난 번 남편 혼자 면회를 갈 때도 면회 때 챙겨올 것에 대한 당부전화를 여러 차례 했다. 이번에도 휴가 올 날만 기다리며 전화를 건다. 군대 생활을 하는 아들에게 시간은 거북이처럼 느리게 가고 있을 것이다. ‘휴가’라는 선물을 기다리면서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있을 아들이 기다려진다. 분명 같은 시간인데 지금의 내 시간과 아들의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속도를 내고 있다.

현관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면 서른 초반의 가족 사진이 보인다. 예쁘지 않아도 젊어서 환해 보이는 내가 있다. 예전에는 스쳐 지나쳤던 과거의 물건이 자꾸 눈에 보인다. 거실 한 켠에 바이올린 모양의 멈춰진 시계도 그렇다. 결혼 초 집들이 선물로 받아서 쉽게 버리지 못하고 고치지도 못한 채 놔두었다. 그런데 그 시계를 보면 잠깐이나마 느린 세상 속에서 나를 본다. 가진 것 없어도 행복하고, 남편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던 시골에서의 삶을 떠 올리게 하는 물건이다.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몇 곱절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는데, 늘 시간에 쫒기며 살고 있다. 바쁘다 보니 남편과 함께 하는 시간도 줄었다. 주말에도 일하며 왜 그리 힘들게 사는지 내 삶에 의구심이 자꾸 든다. 

욕심을 부린다면 60대까지는 바쁘게 살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시간에 대한 고민은 필요한 때이다. 누구나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만 사람마다 느끼는 속도도 다르고 사용하는 방법도 천차만별이다. 시간에 쫓기듯이 휘둘리지 않고, 내 의지대로 조율해서 쓸 수 있는 지혜를 얻고 싶다. 빠름과 느림을 적절히 섞어서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하고 싶다. 그 동안 마음을 나누지 못했던 이들과 함께하는 채움의 시간도 마련해야겠다. 기대치가 높아진 나의 시간은 바위 옆을 휘돌아 나가는 물길처럼 흘러간다.

지하철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빠르게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잠시 발을 멈추고 아침 햇살을 받는다. 내 시간의 주인으로 돌아가서 남아 있는 내 삶이 좀 여유롭기를 기대하며 다시 길을 걸어간다.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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