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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향기 나는 쇠뜨기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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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7.02 13:33
  • 기자명 By. 충청신문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어린 내 손에 쇠뜨기를 뜯어먹는 소의 고삐가 들려질 때가 있었다.

그 때의 초 여름날, 해 저녁에 할아버지께서는 지친 암소를 몰고 들녘으로 나가신다. 온종일 부려 먹은 순한 암소를 싱싱한 풀밭에 풀어놓으면 이리저리 다니면서 저 혼자 풀을 뜯어먹는다. 쪼그만 나는 소가 달아날까봐 고삐를 잡고 있으면 할아버지는 “우리 소는 순해서 도망가지 않으니 내버려둬라” 하신다. 정말로 순했던 것 같다. 놀이거리가 없는 바쁜 농사철에는 부모님의 일손을 돕는답시고 우리또래 몇 명은 제각기 소를 끌고 다니며 풀을 뜯어 먹게 한다. 얼마쯤 지나면 소를 밭둑에 매어놓고 영락없이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길가양쪽에 수북이 올라온 그령을 잡아 매어놓고는 누가 걸려 넘어질까 하고 숨어서 지켜보는데 아이들은 고사하고 밭일을 마치고 지게에 한 짐을 지고 가는 어른이 걸려 넘어져버린다. 이 모습을 보며 까르르 웃다가 도망가는 녀석에 붙잡혀 호되게 혼났던 철부지들은 지금 무엇을 할까.

고향 후배 등단식에 간일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주인공마냥 설레어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서성거렸다. 수몰로 억지로 고향을 잃은 고향사람들을 만나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 싶어서였는지 모른다. 늘 그랬었지만 문인협회에서 주최하여 행사를 치르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아름다워 보였다. 우리 협회는 어느새 쇠뜨기처럼 뻗은 문인들의 글밭이 되었다.

쇠뜨기는 번식력도 강하고 뿌리가 하도 깊이 박혀 뿌리의 끝을 모르겠다고 아버지께서 귀찮아하셨다. 갓 쓰고 밭을 매고 지나가면 어느새 얼굴을 쏙 내밀고 ‘갓 쓴 놈 어니 갔냐?’ 할 정도로 번식이 왕성한 식물이라나. 이런 쇠뜨기를 수년 전 지혈이나 이뇨 신장이나 암 치료에 효과가 좋다고 마구 갈아먹고 설사병이 나서 떠들썩했던 일이 생각난다. 쇠뜨기 즙을 먹을 때는 오이나 박을 함께 먹어야 탈이 안 난다는데.

음성의 글밭에도 쇠뜨기처럼 단단한 뿌리가 있다. 그분은 삶을 소박한 글에 담아 명쾌하고 서정이 넘치는 언어로 감성을 표현하여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 내공이 보통이 아닌 스승님을 닮고 싶지만 어림도 없다. 글을 쓰는 이는 풀 한포기 모든 일상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니 평범하고 미미한 존재도 선생님의 눈에는 생동감 있고 가치 있는 이야기로 태어나고 만다. 여고 시절 글쓰기를 잘 해보려고 많은 시를 베끼고 소설을 읽기도 했다. 글 쓰는 일은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들만의 덕목이라고만 생각해서 바로 접은 일이 지금도 후회 되는 일이지만 반 선생님의 잎줄기 마디마디에 매달려 글쓰기에 공부중인 회원이 많아서 좋다.

우리 협회는 여전히 쇠뜨기처럼 뿌리가 단단한 글밭이지만 힘이 센 글보다는 향기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많아서 문학의 향기가 영원히 펴져 나가는 글밭이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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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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