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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저비섬의 물길

한기연 시인·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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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8.05 15:42
  • 기자명 By. 충청신문
한기연 시인·평생교육강사
한기연 시인·평생교육강사

의자에 누워 바라보는 하늘, 얼마만인가? 바다를 끼고 너른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온몸을 깨운다. 아픈 구석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이 반갑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누워서 부는 바람을 맞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던가 싶다. 떠나길 참 잘했다.

큰아들과 궁평항을 목적으로 갔다가 마뜩치 않아서 제부도로 향하는 중에 정자를 보았다. 집에서 가져 온 쌈채와 삼겹살을 구워 점심을 먹었다. 쉬고 싶었다. 간단한 기구로 원두커피를 내려서 마시고 누웠다. 오늘은 목적지만을 보고 달려가지 않을 생각이다. 평일에 쉰다는 것은 수입이 줄어드는 일이라 복잡한 심경이었다. 이것저것 고민하다가 1박 2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아직은 혼자 가는 것이 두려워 아들에게 말하니 선뜻 동행에 응했다.

나와 비슷한 성향으로 마음이 잘 맞는 큰아들과 ‘바닷속의 찻길’을 달려 제부도로 들어갔다. 탁 트인 바다가 섬의 운치를 더했다. 해안가를 따라 달리다가 검정색 컨테이너가 여러 개 있는 곳에 멈췄다. 관광객이 휴식도 할 수 있고 바다를 내려 볼 수 있도록 전망대도 있는 갤러리였다. ‘드로잉 바톤터치’라는 주제로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경기도 창작아트센터의 입주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그림을 보는 순서를 안내하는 주민이 있었다. 흰색 종이에 바늘로 ‘바톤터치’라는 글자와 이미지를 점자로 표현한 작가의 그림이 시작이었다. 안내하는 이의 말에 따르면 제부도와 관련해서 먼저 작품을 보고 그것을 이어서 자신의 작품을 표현하는 릴레이 형식의 작품전시라고 한다. 그림마다 제목과 작가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전문작가로부터 시작된 작품의 끝부분은 주민의 그림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은 관광객도 함께 할 수 있는 ‘바톤터치’로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란다.

따뜻한 느낌의 채색위에 집 모양의 선을 그린 그림을 유심히 보다보니 ‘섬’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덩그마니 집이 그려진 그림 앞에서 생각이 많아졌다. 현관문을 닫고 들어가면 독립된 공간이 집이다. 밖에서 상처를 입고 들어 선 집에서 치유가 되기도 하고 어떨 땐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더 큰 상처를 입기도 한다. 때로는 편안한 쉼터가 되기도 하고, 불편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제부도는 섬이면서도 섬이 아니고, 육지이면서도 육지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작가는 집을 섬으로 표현한 걸까? 바라보는 이마다 다른 느낌과 색깔로 표현 한 그림 속에 제부도가 담겼다. 그림 중에는 밀물이 들어오면 자동차길이 바닷물로 덮여서 통행할 수 없는 제부도 주민의 불편함을 육지와 섬을 연결한 사다리를 놓은 그림도 있었다.

전시실을 나오면서 아들은 그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며 한마디 한다. 나는 안내인의 설명이 좋았는데, 아들은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든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도 나름대로 느낄 수 있는 권리가 있는 데 그 부분이 아쉬웠다고 한다. 듣고 보니 일리 있는 소리다

육지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섬이라는 뜻으로 불린 제부도의 옛 이름이 ‘저비섬’이라고 한다. 지금의 섬이름 보다 더 정겹다. 이 섬은 하루에 두 번 물때에 따라 바닷길이 열린다. 물때에 맞춰 도로를 건너오면서 양쪽으로 바닷물이 출렁이는 모습을 보면서 신기했다. 물길이 닫히면 고립되어 버리는 섬 주민에게 이 길은 걸어서 갈 수 있는 편리한 연결통로이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서 서로가 다른 생각으로 바다를 응시한다. 감미로운 음악과 소리 없이 바다위를 날고 있는 갈매기가 보인다.

나는 지금 남편 혼자 지키고 있는 집, 내가 가꾸고 지켜야할 섬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고립된 공간일지도 모르지만 물때를 잘 맞추면 길은 열리리라. 사람과의 관계도 저비섬의 물길처럼 때가 있어서 시간을 맞출 수 있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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