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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전기장판

김정호 백제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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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12.04 15:39
  • 기자명 By. 충청신문
춥다. 겨울은 약자에게 가혹한 계절이다. 난방 준비를 한다. 의식주(衣食住), 난방이 되지 않는다면 인간은 삶을 살아갈 수 없다. 전기장판을 꺼낸다. 거실에도 깔고, 침대에도 깐다. 전기장판은 필수품이 되었다. 언제부터 나는 전기장판에 익숙해졌을까?

고대 인류는 동굴에서 살다가 움집을 짓고 살았다. 우리는 온돌을 진화시켰다. 온돌은 한반도에 존재하는 독특한 문화다. 장판은 온돌문화다. 전통 한옥 장판은 새벽질을 하고 그 위에 기름 먹인 종이로 바른 방바닥을 말한다. 새벽질은 구들장 위에 진흙으로 틈을 메우고 바탕 면을 만드는 것이다. 장판지 위에는 “콩댐”을 했다. 물기가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물에 불려서 간 콩에 들기름을 섞어서 여러 차례 덧바른다. 장판을 깔 때는 구들 표면에 얇은 종이를 바르고 한지를 덧바른 위에 기름종이를 발라서 마무리했다. 장판은 친환경이면서 온돌에서 열전도가 우수하다. 근래에는 바니시를 도포하거나, PVC 비닐 장판으로 대체되어 왔다. 그런 개념으로 본다면, 전기장판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장판은 아니다. 독립적으로 이동할 수 난방 기구다. 전기가 없으면 사용할 수 없다. 전기매트라는 용어가 더 적합할지 모른다. 몽골 여행을 갔더니, 관광용 숙소 게르(Ger)에도 우리 제품 전기장판이 깔려 있었다.

온돌방은 구들이 갈라지거나 깨지면 방바닥에서 연기가 스며 나와 일산화탄소 중독을 일으킨다. 연탄이 서민용 땔감으로 한창이었을 때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은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연탄 배달은 겨울의 시작이었다. 연탄재 발로 차며 살아온 세대에게 연탄은 애증의 추억이다. 줄지어 산동네 연탄 나르기 봉사활동 진풍경은 사라졌다.

요즘 주택에는 아궁이가 없다. 부엌은 사라졌고, 주방이 자리 잡았다. 주방과 거실 구분이 없는 원룸도 있다. 침대, 식탁, 전자레인지, 커피포트가 한 공간에 있다. 더불어 전기장판이 있다.

전기장판은 선전도 요란하다. 전자파 제로, 전자파 완전 차단, 무전자파, 무감전, 초절전을 내세운다. 종류도 다양하다. 보통 인조 가죽이지만, 겉이 천이라면 전기요, 온열매트로 불린다. 거실용 대형 장판에서부터, 침대용, 2인용, 1인용, 캠핑용도 있다. 소파나 의자에 깔고 앉아 쓰는 작은 사이즈의 전기장판은 편리하다. 핫 팩을 주머니에 넣고 달달 떠는 추운 사무실에서도 방석 같은 전기장판은 인기다.

가옥 난방은 갈수록 잘 되고 있다. 보일러가 보급되었다. 도시가스가 연결된다. 그럼에도 에너지 빈곤층이 의외로 많다. 에너지 빈곤층은 소득 대비 광열비 비중이 높아서 에너지를 필요한 만큼 사용하기 힘든 취약계층이다. 노인 가구와 저소득 가구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주거환경 자체가 열악하다. 창틈을 메꾸고, 유리창에도 단열 뽁뽁이를 붙이지만 역부족이다. 방바닥에서, 벽에서 냉기가 엄습한다.

전기장판을 끄지 않고 나오는 경우가 자주 있다. 외출할 경우 끄는 것을 잊어버린 경우, 불안하다. 빨리 집에 돌아가야 한다고 안절부절 못한다. 전기세 걱정이다. 전기세는 전기사용요금인데 아직도 세금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다. “원전을 폐기해서 그렇대!” 누가 이런 황당한 기승전결 가짜 뉴스를 퍼트리는지, 가슴이 아프다. 전기장판에게 부끄럽다. 오래 된 전기장판은 교체해야 한다. 화재위험이 크다. 코드가 마모되어 타버리는 일이 일어난다.

덥다고 창문 열어 환기시키는 아파트,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공간에서 사는 것은 인간의 꿈이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빈부의 격차는 더 커지고 있다. 겨울은 강자와 약자가 또렷이 구별되는 계절이다. 따뜻하면 가진 자요, 추우면 가지지 못한 자다. 배고프면 춥다.

전기세가 무서워 온도를 낮추는 할머니, 한 여름에도 등이 시려 전기장판 틀고 자야 한다던 독거노인, 반 지하 어린 남매, 공사장 가건물 안에서 겨울을 나는 헌 전기장판, 꼬부리고 자는 잠이 편할 리 없다. 전기장판 없었으면 어찌 하였을 거나! 고마운 전기장판, 대한민국 겨울은 전기장판이 버티고 있다.

춥다. 따뜻한 온기가 필요하다. 에너지 빈곤층은 여전히 사각지대다. 단순히 저소득층 지원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매스컴은 일그러진 정치판에 매몰되어 난장판이다. 홀로 전기장판에 의지해 겨울을 나야하는 이웃들을 돌아보자.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은 겨울이 지성적이란다. 겨울왕국, 엘사 공주여. 따뜻한 겨울을 열어다오. 사랑은 얼음 속에서도 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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