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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아이 엠 마더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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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02.10 14:12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혜숙 수필가
이혜숙 수필가
여전사가 악당을 제거한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말처럼 거침없이 악당들을 쓰러뜨린다. 평범한 주부인 한 여인이 딸의 10번째 생일날 마약 조직원들의 총격에 눈앞에서 남편과 딸을 잃는다. 충격에서 깨어난 여인은 증인석에서 범인을 지목하지만, 부패한 판사는 범인들을 풀어준다.

5년 후 총격사건과 관련 있던 인물들이 하나둘씩 살해당하자 언론과 경찰은 거액의 돈과 함께 사라진 여인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그 여인의 정체도 모른 체 범인을 잡으려는 경찰. 그에게 다가오는 수사의 눈을 피해 악당을 제거하는 여인. 딸과 남편을 잃은 여인은 가혹한 훈련을 통해 전사가 되어 부패한 판사와 경찰과 마약 조직원을 처리하면서 마지막에는 그들 모두를 경찰이 소탕하게하고 끝이 난다. ‘아이 엠 마더’ 영화의 줄거리다.

내가 그 여인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법을 수호하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부패되었다면 그림자가 되어 나도 그 여인처럼 하지 않았을까. 모정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할 것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버릴 수 있는 것이 엄마다.

오래전에 아내를 성폭행한 사람들을 찾아 하나하나 제거해가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경찰이 아내를 범한 범인을 찾지 못하자 스스로 범인을 찾아내서 한 사람씩 제거하는 모습을 보면서 박수를 쳤다. 내용은 다르지만 영화와 드라마가 비슷해서 인지 공감대가 높았던 것 같다.

딸이 7시면 돌아온다고 했는데 오지 않는다. 갑자기 불안이 엄습하면서 좌불안석이다. 8시가 되었는데도 딸은 돌아오지 않는다. 급한 마음을 누르고 학교에 가니 그곳에 교복을 입은 여학생 서너 명이 껄렁대는 모습으로 책상 위에 비스듬히 서 있다. 낄낄대며 말하는 표정이 묘한 그 애들에게 딸의 행방을 물으니 금방 올 거란다.

우리 딸이 만약 빨리 오지 않으면 너희들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 말을 듣고도 겁 없는 표정이다. 속으로 저 애들을 어떻게 혼내줄지 고민했다. 태권도 우단자인 나는 한명씩 두들겨 패 줄지, 아니면 애들을 한 명씩 가두어 둘지를 고민하며 딸애가 잘못된다면 모두 다리를 분질러 꼼짝 못하게 해야지 생각했다.

딸이 오지 않는 잠깐 동안 온갖 못된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닌다. 기다리는 동안 애들을 따뜻한 말로 이해시키기보다는 애들을 어떻게 처치할까만 생각했다. 영화가 오버랩 된다. 내가 그 여인이 되어 하나씩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면서 화를 내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학교폭력으로 시달리던 아이가 부모에게 이야기 하고 부모가 경찰에 신고해서 그 애들이 입건되었단다. 그걸 이유로 다른 패거리들이 그 애를 모텔로 데리고 가서 얼마나 때렸던지 갈비뼈가 부러지고 팔까지 부러졌단다. 티브이를 보면서 울분했던 마음이 성인이 된 딸애가 학교 폭력을 당하는 꿈으로 이어졌나보다. 이해시키기보다 나쁜 마음이 먼저 일어난 꿈을 꾼 나도 똑같은 폭력을 행사한 것 같다. 내가 이런데 아직 판단력이 약한 아이들은 더 하겠지. 얼마나 화를 냈던지 깨어나니 어깨가 뻐근했다.

나는 왜 아이들에게 좋은 말로 타이르고 바른길로 가라고 설득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내 아이만 생각하고 집착해서 나쁜 생각만 한 것 같다. 그 애들도 누군가의 귀한 자녀일 텐데 야단칠 생각만 했다는 것이 비록 꿈이지만 부끄럽다. 깜깜한 밤 허공에 둔 눈이 갈피를 잡지 못한다.

학생들의 학교폭력에 대한 글을 읽다보면 어이없는 사건들이 많다. 중. 고등학생들이 학교폭력 대상들이려니 했는데, 초등학생에게도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의 보복이 무서워 부모에게는 물론 선생님에게도 말을 하지 못하고 피해자는 계속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부모에게 말을 못하는지. 학교에 분명 신고 체계가 있을 텐데 담임선생에게는 왜 말을 하지 못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선생님들을 못 믿는다는 것이 그 애들은 말이다. 신고를 하면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거나 적당히 타이르고 만다는 것이다. 선생님들은 시끄러운 일이 일어나는 걸 싫어한다고 한다. 이번에 뉴스를 보고서야 이해가 되었다. 가해자를 벌주면 그 그룹에 있는 애들이 보복을 한다는 것을.

일진이었던 학생이 교사가 된 것을 본 피해자의 절규. 연예인이 되어 티브이에 나오는 것을 본 피해자의 아픔이 보도되었다.

누구나 실수는 한다. 특히 성장기 아이들은 더 많이 실수를 하고 산다. 그 실수를 바로잡아주는 것은 우리 어른들의 몫이다. 무조건 아이들만 나무랄 것이 아니라 어른인 우리가 먼저 반성해야 할 것 같다.

뉴스에서도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뉴스가 난무한다. 국회의원들의 난투극도 거침없이 보낸다. 따뜻한 소식보다는 어른들의 안 좋은 소식을 보고 자란 아이들 보고 바르게 행동하라고 하면 따라줄까.

시험성적에만 연연하지 말고 더불어 사는 세상임을 알려주고 우정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를 가르쳤더라면 학교폭력이란 단어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환하게 가식 없이 웃는 아름다운 아이들의 모습을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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