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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호랑이해의 염원

최혜진 목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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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1.24 15:3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최혜진 목원대 교수

2022년은 임인년(壬寅年) 호랑이해다. 호랑이는 한자 말이다. 범 호(虎)자와 맹수나 이리를 뜻하는 낭(狼)자가 합쳐져 된 말이다. 원래는 무서운 동물을 상징하는 말이었지만, 후대로 오면서 범을 나타내는 말로 굳어졌다. ‘범’은 호랑이의 순우리말이다. 호랑이는 우리나라에 아주 오래전부터 서식했다. 청주 두루봉 유적에서 발견된 호랑이 뼈는 무려 12만 년 전 것이라 하니 그 역사를 알 수 있다. 특히 만주와 한반도 일대는 시베리아호랑이가 많았다고 한다. 호랑이는 용맹과 신성을 상징하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물이 되고 있다.

그러나 조선 시대까지 ‘호환’은 국가의 끊이지 않은 재난과 근심이었다. 그래서 살생을 금지했던 불교국가와 달리 조선왕조는 건국 때부터 호환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고, 호환의 피해를 막기 위한 포호정책을 펼쳤다. 호환이 전국에 걸쳐 발생하며 점차 증가했기 때문이다. 태종 대에는 호랑이 사냥을 위한 전문부대인 ‘착호갑사’와 ‘착호인’ 전문부대가 운영되었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착호갑사’는 440명 규모였고, 지방의 경우 ‘착호인’은 주와 부에 50명, 군에 30명 정도의 규모였다. ‘착호갑사’는 정규부대였고, ‘착호인’은 재난이 닥쳤을 때 모집하는 비정규부대였다고 한다.

‘착호갑사’와 ‘착호인’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17세기 말 이후 호랑이는 개체 수가 많이 증가하였다. 이 무렵 한반도로 호랑이가 대거 이동하는 현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익은 자신의 ‘성호사설’에서 “지난해에 범 몇만 마리가 잇달아 북도의 강을 건너와서 온 나라에 퍼지게 되었다.”라고 기록했고, 호환을 외적의 침공에 비유할 만큼 피해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렸다. 이후 조선왕조는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의 착호군을 동원하여 적극적인 호랑이 잡기 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포수들이 호랑이를 잡으면 주로 무명과 삼베를 포상으로 주었다.

이처럼 호랑이 잡기에 온 나라가 동원될 만큼 호랑이는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호랑이는 인간과 공존하는 대상이었기에 서민들은 ‘지혜’와 ‘해학’으로 호랑이를 물리치고자 하였다. 호랑이 설화나 민화 등에 나타나는 호랑이들은 해학이 넘치는 모습, 약자들에게 골탕을 먹거나, 인간에게 은혜를 갚고, 효부 효자를 알아보는 친근한 모습으로 등장하곤 한다. 인간과 호랑이는 공포나 숭배의 대상을 넘어 공생관계로 살아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팥죽과 할머니’ 이야기는 약자들이 어떻게 호랑이를 물리쳤는지를 경쾌하게 보여준다. 산골에 혼자 살던 할머니가 팥을 심고 있는데, 어느 날 무서운 호랑이가 나타나 잡아먹으려 한다. 할머니는 팥 농사를 다 지어 동짓날 팥죽을 먹을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한다. 드디어 동짓날이 되어 호랑이가 올 때가 가까워지자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팥죽을 쑨다. 이때 할머니에게 알밤, 송곳, 개똥, 맷돌, 자라, 멍석, 지게가 차례로 와서 팥죽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가 팥죽을 주자, 이들은 호랑이를 물리치도록 도와주겠다고 한다. 드디어 나타난 호랑이는 팥죽을 달라 부탁하고 부엌으로 들어갔는데, 알밤에 눈을 얻어맞고, 자라에게 코를 물린 후 개똥에 미끄러지더니, 송곳에 찔린 후 맷돌에 맞아 죽는다. 멍석이 호랑이를 둘둘 말으니 지게는 호랑이를 싣고, 깊은 강 속에 던져버렸다.

호랑이가 할머니의 부엌 친구들에게 호되게 당해 결국 죽고 만다는 스토리는 서민들의 통쾌한 복수를 보여주고 있다. 할머니의 팥죽이 먹고 싶어 동짓날 다시 찾아오는 호랑이, 알밤이나 개똥, 송곳, 자라 등 살림살이 등이 총출동되어 호랑이를 물리치는 모습에서 소박하고 순수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할머니를 도와주었던 지킴이는 착호부대가 아니라, 늘 자신의 곁에서 함께 살아왔던 살림 도구였던 것이다.

‘호환’과 같은 국가 재난에는 국가가 책임지고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 착호부대시스템이 있다 하더라도 몇몇 포수에게 상금을 주고 끝이 나서는 서민들의 생명을 지킬 수 없다. 국가적 시스템이 할머니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니, 눈물의 팥죽을 먹은 알밤과 개똥 등이 일어서는 것이 아닌가.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기호지세(騎虎之勢: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형세라는 뜻으로, 이미 시작한 일을 중도에서 그만둘 수 없는 형세)로 달려가는 대선 후보들은 이를 명심하고, 국민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들으시기를 바란다. 그래서 올해는 국가의 재난이 모두 없어지는 원년이 되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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