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문화속으로] 청산은 어디에

최혜진 목원대 교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22.04.18 14:4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최혜진 목원대 교수

봄이 한창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꽃잔치가 열리고, 나무들은 새롭게 기운을 얻고 푸른 잎을 쏟아내고 있다. 봄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생명력 때문에 우리는 많은 표현들을 ‘봄’을 빌어 노래하곤 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빼앗긴 땅을 노래했던 이상화 시인도 ‘독립’의 도래를 ‘봄’에 빌어 우리의 울분과 고통을 표현하지 않았던가.

봄은 ‘이상’과도 연결된다. 무릉도원은 복사꽃 만발한 봄날의 풍경을 이상으로 그린다. 그리고 그 무릉도원이 있는 곳은 산 속이다. 꽃이 피고 새가 우는 곳 ‘청산’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청산을 노래한 고려시대의 가요 ‘청산별곡’은 현실적 비애를 가진 시적 화자가 세속을 떠나 청산이나 바다에 가서 살고 싶다는 염원을 보여준다. ‘청산별곡’은 많은 사람들이 불러, 궁중에서도 이 가요를 가져댜 부를 만큼 인기있던 노래였다. 조선시대 ‘악장가사’나 ‘시용향악보’에 실릴 만큼 오랜 세월을 거쳐 전승되던 우리 민족의 노래였던 것이다.

‘청산별곡’에서 화자는 청산에 살고 싶다고 노래한다. 또는 바다로 가서 살고 싶다고 노래한다. 청산은 어떤 곳이고 바다는 어떤 곳인가. 현실 속에서 고통을 받는 화자에게 청산과 바다는 그리 대단한 곳이 아니다. 청산에서는 머루나 다래를 따먹고 살고, 바다에서는 해초나 굴조개를 캐먹고 살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식은 자연 속에서 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이니, 화자가 청산에서 살고 싶은 실체는 결국 소박하지만 걱정없는 삶이다.

‘청산별곡’의 주제를 ‘현실 도피’라고 보는 관점은 이러한 의미에서 정확한 것이 아니다. ‘살고싶다’는 가정형의 노래이고 화자는 아직 현실 어딘가를 정처없이 떠도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현실이 허락한다면 언제든 정착할 의지가 있는 존재라는 점이 중요하다. 조롱꽃 누룩의 향이 자신을 붙잡아 결국 자리를 잡고만다는 마지막 결론이 그것을 의미한다. 떠돌던 존재는 어느 마을 부엌에서 들리는 노래 소리, 간소한 술 대접 한잔으로 그만 마음을 풀고 말았던 것이다.

‘청산별곡’은 사람이란 결국 공동체 내부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노래한다. 하지만 그가 겪고 있는 현실은 어떤가. 그는 일단 시름이 많아서 울고 있는 새보다도 더 많이 울고 있는 사람이다. 이끼 묻은 쟁기를 가지고 떠도는 사람이다. 농사지을 땅 한 줌이 없어 농기구조차 녹이 슬고 이끼가 낀 상황이니, 하층민의 경제적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는 밤을 홀로 지내는 고독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고독의 밤을 지내며 누가 자신에게 돌을 던졌는지도 모른채 돌을 맞아 운다고 표현했다.

‘청산별곡’은 청산이나 바다로 떠날 수밖에 없는, 하지만 현실의 고통을 벗어날 수 없는 각박한 서민의 삶을 그리고 있다. 생계를 위협받고 새보다도 시름이 많아 정처없이 떠도는 유랑민의 고통을 그린다. 농사지을 땅은 고사하고, 가지고 있던 농기구조차 쓸 일이 없어 폐기처분될 처지에 놓여있다. 그들에게 청산은 결코 장밋빛의 정원이 아니라, 최소한의 생계 걱정이 없는 곳이다. 이 지점에서 나의 마음은 늘 뭉클하다.

21세기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코로나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대규모 실업, 소상공인의 절규, 예술인들의 좌절 등이 쓰나미의 잔해처럼 남아있다. 인플레나 금리 인상 등 앞으로 닥칠 일은 또다른 재난이다. 예나 지금이나 산다는 것은 여전히 팍팍하고 어렵다. 지금은 지금의 고통과 고난이 있는 것이다. 평생 월급으로는 집 한 채 장만하기 어려운 현실은 머루 다래조차 먹기 힘든 고려시대와 닿아있다. 그러니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청산의 꿈이 이동할 수밖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차비를 하는 중이다. 더 나은 대한민국을 꿈꾸며 설계할 그 자리에 먼저 놓여야 할 것은 우리가 매일 화목하게 먹을 수 있는 따뜻한 식탁이다. 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하고,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차별하고, 가진 자가 없는 자의 한 푼을 빼앗는 봉건시대를 다시 재현할 수는 없지 않은가. 협치와 화합이 가지는 근본적인 의미를 잘 새기는 정부가 되기를 고대하고 또 고대한다.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