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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희망프로젝트 두 번째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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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6.06 12:5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신록이 아름다운 5월을 사랑한다. 바람이 살랑 불어 연둣빛 이파리를 가볍게 흔들면 내 마음은 어느새 이파리 속으로 들어가 있다. 봄의 한가운데에서 희망이 내 가슴에 가득 차게 되는 것은 작은 이파리들의 춤사위 때문일 거다.

포항 살 때 부처님 오신 날 찾은 작은 암자. 화창한 날씨에 봄바람이 부드럽게 부는 산신각 뒤를 돌아가 서서 바라보니 큰절 앞 못에 비친 초록의 물결과 반짝이는 이파리가 나를 선경에 든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그 후로 부처님오신 날 참배를 마치면 산사 주변을 거닐며 나뭇잎과 사랑을 나누었다. 5월만 되면 연둣빛 나뭇잎을 찾아 사찰 순례를 했다. 2년 넘게 은둔한 생활이 해제되었다. 올해는 어느 사찰을 찾아 연둣빛 이파리와 사랑을 나눌까.

40여 년 전 가녀린 새싹이 내게 왔다. 지금 생각하면 아직 어린 내가 엄마가 된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나 보다. 아이가 예쁜지 사랑스러운지 느낄 수가 없었다. 새싹은 점점 초록빛이 되면서 희망에 부풀게 했다. 동화책을 사다가 없는 실력이지만 구연동화를 하는 듯 읽어주었다. 아이로 인해 마음이 설레고 희망이 부풀어 오르더니 찬란한 미래가 눈 앞에 펼쳐진 것 같고 힘찬 내일을 설계하게 했다.

오직 하나뿐인 내 아이에게 이것저것 가르치며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영어 동화도 읽어주고 구구단도 가르치니 3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제법 따라왔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미국인이 있으니 가서 영어로 이름을 물어보기도 했다. What your name? 그 미국인이 이름을 말했지만 아이는 알아듣지 못했는데도 싱글거리며 중얼거린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바로 그 순간인 것 같았다.

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 자기가 원하던 공부를 포기하고 내 희망에 맞춘다고 전공을 바꾸었다. 학원의 도움을 배제한 채 나만의 방식을 고집하며 아이에게 박차를 가했던 것 같다. 철없는 엄마는 자기의 꿈을 딸이 실현하게 해 주리란 생각으로 스파르타식 교육(?)을 했다. 무슨 일이든 본인이 좋아서 해야 하는데 아이의 적성은 무시한 채 오로지 내 꿈을 향해 전진하게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내 꿈은 좌절되었지만 결국 본인이 원하던 일을 하며 지금은 나보다 더 열심히 산다. 자식이 소유물이 아닌데도 내 뜻대로 하려 했다. 그땐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인 줄 착각했다. 길다고 생각하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좌지우지하려 한 내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지금은 나도 편안해졌고 본인도 하고 싶은 일을 하니 즐겁다 한다.

40대 초반의 아이는 작년에 엄마가 되었다. 그런데도 아직 나는 아이의 어릴 적 꿈을 꾼다. 꿈속에서도 그 버릇 못 버리고 아이를 닦달한다. 품에서 보내지 못하고 붙잡고 있어서일까.

딸아이는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려 해서 아기는 내 몫이 되었다. 두 번째 희망의 새싹이 온 것이다. 어떻게 해야 잘 키울 수 있을까. 딸을 키울 때는 고집을 부리거나 잘못한 일이 있을 때는 어김없이 회초리를 들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데 사랑의 매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니 얼마나 철없는 엄마였던가.

손녀에게 책을 읽어주며 정서적으로 키워야지 마음먹고 전래동화 한 질을 샀다. 어설픈 구연동화를 하며 읽어주는데 듣질 않는다. 책을 몽땅 꺼내더니 찢어서 입에 물고 헤헤 웃고 있다. 하긴 뭘 알아서 듣겠나. 할머니의 쓸데없는 욕심이지.

다행인 것은 구구단을 노래처럼 외우면 좋아한다는 것이다. 딸아이는 3살 때 구구단을 다 외웠는데 손녀도 그럴 수 있을 거로 생각하고 듣든지 말든지 열심히 구구단을 왼다. 아직도 남아있는 극성이 시작되나 보다.

나이 들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슈퍼맨 아빠들처럼 자상하고 곱살스럽게 하면 좋으련만 천성이 차분하지 못해서 그런지 자꾸만 목소리가 커진다. 몸이 말을 안 들으니 귀엽고 예쁘기지만 힘들면 짜증도 난다.

걸음을 걷기 시작하면서 밖에 나가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코로나로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해서 일 년을 집안에서만 살았으니 저도 답답하겠지. 봄인데도 날씨가 여름날처럼 덥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한낮에 나가자고 하니 죽을 맛이다.

손녀를 키우는 것은 딸 키울 때와는 완전 다르다. 딸 키울 때는 몰랐는데 마냥 사랑스럽다. 딸 키울 때처럼 내 뜻을 주장하기보다는 아이의 적성을 찾아보고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서로 이야기하며 미래를 결정해야겠지.

13개월을 막 넘긴 아이가 벌써 자기 주관이 뚜렷하다.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관철 시키려 하고 싫은 것은 막무가내로 안 하려 떼를 쓴다. 섭생이 좋아서일까. 요즘 아기들은 모든 것이 빠른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무서우리만큼 힘들지만 나눌 말이 별로 많지 않던 우리 부부에게 웃음과 대화를 하게 한다. 몸은 고된데 손녀가 주는 기쁨은 힘듦을 상쇄시킨다. 호기롭게 시작한 두 번째 희망이 나를 젊어지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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