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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하나면 된다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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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7.05 17:04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함께 글을 쓰며 알고 지낸 지 수 년째인 그녀는 오늘도 새벽 네 시에 일어났단다. 블루베리가 익어가는 철이라 요즘은 동도 트기 전에 농막에서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두어 시간 남짓 열매를 따고 나면 멀리 보이는 앞산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르는 장관이 볼 때마다 새롭단다. 새로움은 늘 그녀에게 삶의 활력소인 듯 볼 때마다 씩씩한 모습이다. 바쁜 아침, 출근을 서두르는데 그녀는 새벽에 땄다며 블루베리 한 통을 내 차에 실어주고 유유히 사라졌다. 소박하게 즐기듯 농사를 짓고 틈틈이 농막에서 열심히 글을 쓰며 이순의 나이를 멋지게 사는 그녀가 좋다.

한 달에 한 번 유치원 아이들과 함께 숲 체험 수업에서 만나는 숲해설가님도 대단한 분이다. 그분은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직 후 제2의 삶을 살고자 유아 숲해설가 자격증에 도전했단다. 지금이야 전국에 양성기관이 설치되어 마음만 먹으면 쉽게 배우고 자격을 갖출 수 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가르치는 기관이 별로 없어서 멀리 서울까지 손수 운전해 오고 가며 수업을 들었다니 그 과정이 얼마나 고단했겠는가. 그러나 그 고단함의 끝은 젊은 시절 교사가 꿈이었던 소망을 이루게 했고 인생의 후반기엔 현장에서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가르치며 얻는 보람과 즐거움 속에 안착했단다.

나에게 처음 수필에 입문하도록 길을 열어주신 은사님은 올해로 이미 팔순을 넘기셨다. 그러나 연륜만큼이나 등이 살짝 굽었다는 것 외에는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매주 화요일 두 시간 남짓의 강의시간을 열정으로 꽉 채운다. 수업준비는 물론이고 시간까지 철저하시다. 그 연세에 깨알 같은 노트북 자판을 두들겨 매달 이곳저곳에서 들어오는 원고청탁을 거뜬히 소화해 내시고 하루 한 시간 집 근처 하천길을 따라 운동 삼아 산책하는 모습이 내게는 그저 감사하고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그런가 하면 자주 다니는 미용실 원장님은 어느 날부터인가 그런 이야기를 한다. 젊어서부터 시작한 미용업이 어느새 강산이 세 번 바뀔 세월을 거쳤건만 갈수록 마음은 텅텅 비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자식들 키우며 먹고 사느라 열 평 남짓 미용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단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자식들은 모두 자라 부모 품을 떠났고 늘어난 건 손님 머리 만지느라 망가진 손과 본인의 나이뿐이라며 일밖에 모르던 자신의 과거를 되돌리고 싶다며 푸념 아닌 푸념을 자주 드러낸다. 미용업 외엔 딱히 잘 하는 것도 없고 배우고 싶은 것이 있어도 자신이 없다며 망설이고 주저하다 여기까지 왔단다.

나 역시 한때 직장만 다니기에는 하루가 너무도 길다는 생각을 했다. 그 긴 시간을 저녁마다 사람들과 만나 함께 저녁을 먹고 수다를 떨다 들어오면 그때뿐이었다. 처음 며칠은 길다는 생각에서 잠깐은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날들이 어떻게 매일 이어지겠는가. 어느 날부터인가 취미 한 가지를 가져야겠다 생각하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그리고 어느새 글을 읽고 쓰는 일을 취미로 삼아 하루하루 무료하지 않은 일상을 누리고 있다.

새벽이슬을 밟으며 블루베리를 따고 나눠주는 재미로 사는 그녀 역시 열매가 익어가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단다. 단조로운 일상에 활력소가 된단다. 초록으로 둘러싸인 숲속에서 아이들과 한바탕 놀고 나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는 숲해설가님 역시 본인의 직업에 자부심이 대단하다. 팔순의 노년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은사님에겐 언제 어디서건 보이지 않는 단단한 무언가가 있다. 미용실 원장님께서도 본인을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으면 싶다.

누구나 살면서 한 가지 취미만 있어도 삶은 풍요롭고 즐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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