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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라차차 전통시장] 예산 역전재래시장 “시골살이 돈 쓸 일 없응께 손주덜 용돈 주는 재미지”

장터 곳곳 헤매다보면 바구니엔 소소한 행복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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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9.28 16:44
  • 기자명 By. 홍석원 기자
▲ 예산역전재래시장은 매달 끝자리가 3일과 8일 오일장이 선다. 예산역 바로 앞에 있다.
▲ 예산역전재래시장은 매달 끝자리가 3일과 8일 오일장이 선다. 예산역 바로 앞에 있다.

전통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곳이 아닌 마음을 나누는 곳이다. 특히 충청도 장터는 느긋한 말투와 후한 인심으로 어딜 가도 즐거움과 인정이 넘쳐난다. 대를 이어 만들어지는 맛깔나는 음식과 저렴한 가격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곳, 한번씩 지나가다 들르는 곳, 서민들과 함께 나누고 위로가 되는 곳, 옆집이 잘 되면 덕을 보는 곳이 전통시장이다. 하지만 전통시장이 살기 위해서는 좋은 물건에 착한 가격은 둘째 치고 우선 찾는 사람이 많아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50여년 내공의 어르신들과 작은 일부터 차곡차곡 장사 경험을 쌓고 있는 청년상인들까지 함께 부대끼며 오늘보다 내일을 꿈꾸는 충남의 전통시장들을 톺아본다. (편집자 주)
 

▲ 5일장이 서는 날이면 아침 일찍부터 가로수길에 알록달록 천막이 들어서고 상인들이 자리를 잡으면 하나 둘씩 장보기에 나선 주민들로 길 양편이 꽉 채워진다.
▲ 5일장이 서는 날이면 아침 일찍부터 가로수길에 알록달록 천막이 들어서고 상인들이 자리를 잡으면 하나 둘씩 장보기에 나선 주민들로 길 양편이 꽉 채워진다.

가을 옷 갈아입은 가로수길 좌판·인파로 가득

1955년 개설된 예산 역전재래시장은 상가건물형 중형시장으로 매월 끝자리가 3일, 8일이면 오일장이 선다.

역 맞은편 가을 옷으로 갈아입은 가로수길 좌우로 알록달록한 천막들이 펼쳐져있다면 굳이 손가락을 꼽지 않아도 이날이 장날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역전 공영주차장은 벌써 차들로 꽉 들어찼다.

이곳 오일장은 역전 공영주차장을 중심으로 열린다. 이런 5일 장날은 물건을 파는 상인이나 사는 손님이나 모두가 흥겹다.

동이 트고 좀 늦은 아침쯤이면 어김없이 주변 길가엔 온갖 농산물 좌판이 펼쳐지며 터줏대감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잡아간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는지는 모르지만 자리싸움은 없다. 아마도 그동안 쌓은 내공으로 임자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 한포기 1만5천원의 금배추를 비롯해 직접 현장에서 삶은 족발, 건조기에 안들어간 태양초, 서해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꽃게가 손님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 한포기 1만5천원의 금배추를 비롯해 직접 현장에서 삶은 족발, 건조기에 안들어간 태양초, 서해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꽃게가 손님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도토리묵, 두부, 당근, 고구마, 오이, 늙은 호박, 찰옥수수, 생닭, 사과, 석류, 샤인머스켓, 다래, 체리... 과일, 야채, 수산물 등을 진열해 파는 노점상이 들어서고 갓 수확해 말린 태양초, 팔달팔닥 뛰는 꽃게 등 한눈에 봐도 생기 넘치는 지역 농수산물이 눈길을 잡아 당긴다. 품목이 어찌나 많은지 하나하나 이름만 나열해도 하루 웬종일 걸릴게다.

여기에 차곡히 개어놓은 것 같은 쭈글이 어묵이, 팥고명이 가득한 국화빵은 추억을 소환하며 입맛을 유혹한다.

하지만 이곳 재래시장도 이미 고물가시대를 반영하듯 야채 값이 꽤 올랐다.

작은 배추 한 포기에 1만5천원, 무 한 개에 5천원이다. 폭염에 호우에 외국인 하루 품삯이 13만원이라면서 이 값도 비싼게 아니라며 혀를 내두른다. 텃밭에서 키워 내다판다는 생각에 값을 마냥 깎으려고 하면 낭패를 당할 수 있으니 적당한 흥정이 필요하다.

추석 전후로 좀 남는게 있었냐고 노점을 하는 80대 최 할머니께 여쭤봤다. “말해 뭣유... 장 설 때마다 더도 덜도 말고 추석만 같으면 금새 부자 될뀨”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코로나19확산으로 3년만에 고향을 찾은 자식새끼들 이것저것 바리바리 챙겨 보내고, 손주 녀석들에게 용돈 한 푼이라도 더 챙겨 줄 수 있어서 기뻤다는 첨언에 가족을 위한 끝없는 희생에 경외심이 일었다.

▲ 한전예산지사에 다니는 청년들이 '고객 감사'라며 일일이 좌판을 돌며 물티슈와 장바구니를 전하고 있다.
▲ 한전예산지사에 다니는 청년들이 '고객 감사'라며 일일이 좌판을 돌며 물티슈와 장바구니를 전하고 있다.

이웃들과 나누고, 농민들에게는 도움... 흥겨운 밀당

“장날에 왔으니까 뭐 하나 먹어야 하지 않을까” 가족들과 나들이 나온 가장의 큰 소리에 딸의 발길이 냉큼 족발가게에 멈춰선다. 바로 옆 노점에는 아주머니 2명이 온가족 저녁 만찬(?)으로 이만큼 가성비 있는 것은 없다면서 소곱창을 한 봉지 가득 주문한다.

어딜 가도 흥정이 있고 덤이 있어 정겹고 유쾌한 곳이 시장이다. 태양초를 진열하고 손님을 유혹하는 한 40대 상인은 “요즘 보기 드문 고추”라며 1근에 1만8천만 달라고 한다. 건조기에 들어갔다 나온 것이 아닌 순전히 햇빛에 말려 '때깔'부터 다르단다.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1천원 깎아주겠다며 옷깃을 잡는다.

이곳에 자리잡은 노점 할머니들은 장사의 신 아니면 선수(?) 이다. 손님이 비싸다고 입 삐죽이거나 망설이면 금새 덤이 올라오고, 좀 깎아주면 그만이란다. 그러면서 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안되는게 어딨냐고 당당하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 상인들이 점심시간이 가까워오자 삼삼오오 모여 자장면으로 허기를 때우고 있다.
▲ 상인들이 점심시간이 가까워오자 삼삼오오 모여 자장면으로 허기를 때우고 있다.

점심때가 가까워지며 상인 몇몇이 좌판 한켠서 자장면에 백반에 칼국수 까지 나누어 먹는 모습들이 자주 눈에 띈다.

그 틈을 노려 몇몇 할머니들께 여쭤봤다. 장사에서 번 돈을 어디에 쓰냐고. 단연 손주들 용돈이 압도적이다. 시골살이에 돈 들어갈 일이 뭐 있냐고 한다. 이곳에 나오는 할마시(?)들 중에 먹고 살기 어려워 나오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으시단다. 두 번째 씀씀이는 의외로 ‘맛 있는 것 사먹는 것’이란다. 시골살이의 여유가 느껴졌다.

청년들 서넛이 노점마다 물티슈를 나눠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전력 직원들이란다. 한전예산지사 이건일 대리(34)는 “전 국민이 한전 고객이잖아요”라며 “한정된 예산이지만 두달에 한번 정도 시장을 돌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 물티슈와 장바구니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 5일장이 서는 날이면 이지역 농수산물 뿐 아니라 전국에서 생산됐음직한 온갖 야채와 과일들이 넘쳐난다.
▲ 5일장이 서는 날이면 이지역 농수산물 뿐 아니라 전국에서 생산됐음직한 온갖 야채와 과일들이 넘쳐난다.

카드 결제·휴식 공간 등 인프라 부족 해결과제로

다만 시골장터는 카드 결제가 쉽지 않고 여러 가지 인프라 부족이 개선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일단 구입한 물건은 양 손에 바리바리 계속 들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한번 크고 무거운 물건을 구매했다 하면 느긋하게 다른 걸 쇼핑할 여유가 없어진다. 일부 전통시장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카트를 설비한 곳도 있다지만 아직 시골 장터의 인프라 문제는 약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예산군에서는 지난 2017년부터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예산장터 삼국축제’가 열리고 있다. 올해도 내달 축제가 예정돼 있다. 지난해 열린 제5회 삼국축제에는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현장방문객 6만여명, 온라인 방문객 24만 명 등 총 30만 2000여 명이 축제장을 방문했다. 군은 4억 2000만 원의 매출과 9억 900만 원의 직접적 경제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예산장터 삼국축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한 하이브리드 축제로 대한민국축제콘텐츠 대상을 3회 연속 수상하는 등 지역향토 명품축제로 뿌리내리고 있다. (글·사진=홍석원 기자)

▲ 70년대 시장에서 봤음직한 검정고무줄과 화장실 냄새제거에 탁월했던 나프탈렌 등을 담은 리어카가 눈길을 끈다.
▲ 70년대 시장에서 봤음직한 검정고무줄과 화장실 냄새제거에 탁월했던 나프탈렌 등을 담은 리어카가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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