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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전쟁, 혁명, 음악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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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10.18 10:05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2022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쟁 중이다. 8년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20일 만에 점령했던 전적으로 봤을 때, 올해 우크라이나 침공도 길지 않은 기간에 우크라이나의 함락으로 끝날 것이라고들 예상했었지만 수많은 희생자를 남기며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음악의 역사에서도 전쟁과 혁명은 꽤 밀접하게 궤적을 같이한다. 오페라의 혁명을 가져온 사람으로 작곡가 바그너를 꼽는다. 테마처럼 주제선율을 던져놓고 이를 자유롭게 응용하는 유도동기와 자유자재로 조성을 넘나드는 무한선율을 사용하며 웅장한 음악을 구현했던 바그너의 영향은 막강했다. 그래서 오페라사는 바그너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나흘간 공연되기로 유명한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의 2부 ‘발퀴레’의 3막엔 유명한 발퀴레의 비행(Walkürenritt or Ritt der Walküren)이 나온다. 여전사 발퀴레들이 전장을 누비며 날아다니는 것을 표현한 전주곡이다. 장대한 금관연주로 전쟁영화에서도 오마쥬로 많이 쓰였다. 얄궂은 건 바그너의 광팬이었던 히틀러 영향으로 나치 진군가로도 기록영화에 사용하고, 휴가철이면 바그너 전용극장인 바이로이트에 나치 장교들을 보내서 바그너 음악을 즐기게 한 역사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겪은 이스라엘로선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바그너의 음악들은 금지곡 1순위였다.

1981년에 지휘자 주빈 메타가 이스라엘에서 앵콜곡으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을 연주하려고 했을 때 연주회장 안내원이 무대로 난입해 상의를 걷고 나치로부터 받은 고문 흉터를 보여주며 저지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결국, 2001년이 되어서야 유대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의 이스라엘 순회공연 때 앵콜로 바그너의 곡이 간신히 연주될 수 있었다.

베토벤의 교향곡 중 3번 ‘영웅’ 교향곡은 음악사에서도 매우 의미가 깊다. 악장 구성과 악기사용, 확장구조 등등 여러모로 교향곡의 혁명을 가져온 이 곡에 붙어있던 원래 표제는 보나파르트(Bonaparte)였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헌정할 생각이었다. 나폴레옹이 유럽의 전제 정치를 무너뜨리고 프랑스 대혁명 기치인 '자유, 평등, 박애'를 실현해 줄 영웅으로 여겼던 베토벤은, 그러나 나폴레옹이 전제군주가 되어 스스로 황제의 관을 집어쓴 셀프 대관식(Auto-Coronation)을 치렀다는 소식에 표제를 찢고 영웅 심포니로 제목을 바꿨다.

그랬던 나폴레옹은 1812년 6월 러시아를 침공한다. 프랑스군은 일찌감치 모스크바를 점령했지만, 러시아의 강력한 항전과 예상보다 따뜻했던 겨울에 보급로가 온통 진창이 되어버려 전쟁에 패했고, 러시아는 초반 열세를 극복하고 기록적인 역전으로 나폴레옹을 러시아에서 밀어냈다. 이후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콥스키는 1812년이라는 단 악장 서곡을 작곡한다. 이 곡도 여러 면에서 꽤 혁명적인 곡이다. 러시아 정교회의 성가로 시작하는 곡조에서 곡 중간에 프랑스군의 침공을 상징하는 라 마르세예즈(프랑스 혁명가. 현재의 프랑스 국가; 國歌) 선율로 프랑스군의 침공을 표현한다. 음악들이 서로 전쟁처럼 뒤얽히며 진행되다가 클라이맥스에 ffff(‘강하게’라는 포르테가 4개 붙어있다!!)가 등장한다. 보통 큰북이나 팀파니로 구현하는 ff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작곡가 차이콥스키는 여기에 실제 대포소리를 넣도록 착안한다. 예포소리 16번이 들리며 멀리서 제정 러시아 국가가 연주된다. 러시아군의 승리를 나타낸 것이다. 프랑스의 침략을 물리친 러시아에 자긍심을 북돋기에 이만한 곡이 없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러시아가 지금은 침략군이 되어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짓밟고 있다는 것이다.

경쾌한 선율로 인해 앵콜곡으로 많이 쓰이는 ‘라데츠키 행진곡’은 오스트리아 왕당파였던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북이탈리아를 침공한 라데츠키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쓴 곡이다. 그래서 오스트리아인들에게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광을 추억하며 빈 신년 음악회에서 매년 연주하는 기념곡이지만, 이탈리아로서는 이탈리아 혁명군과 북부 이탈리아 독립운동을 탄압했던 라데츠키 장군이 달가울 리 없다. 그래서 라데츠키 행진곡은 북이탈리아에서는 암묵적인 금지곡이다,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는 1800년 6월 14일,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이탈리아의 오스트리아 점령군 멜라스 장군과 마렝고 전투로 격돌하던 바로 그 날, 혁명군과 이를 탄압하던 공포정치의 로마 경찰청을 배경으로 한다. 오페라 가수인 토스카와 그의 연인이자 혁명파인 화가 카바라도시, 그리고 무시무시한 공포정치의 상징인 경시총감 스카르피아의 3각 구도가 주요 내용이고, 오페라 시작은 정치범으로 갇혀있던 로마공화국 영사인 안젤로티가 탈옥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작품은 주인공 4명이 모두 비극적으로 죽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1월, 대전예술의 전당에 오페라 토스카가 찾아온다. 3년 전 연출가 표현진이 전쟁 폐허로 재해석했던 기획이었지만 코로나로 무산되었다 다시 올려진다. 우연하게도 우크라이나 전쟁상황이 겹치는 지금에 던져주는 메시지가 몹시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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