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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청 10년 내포문화 돌아보기] 21. 조선 천주교의 '못자리'가 된 예산군 신암면 '여사울 성지'

천주교 못자리 ①‘복음 첫 터’ 여사울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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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10.18 10:51
  • 기자명 By. 안순택 기자
▲ 여사울 성지

[충청신문=대전] 안순택 기자 = 작고 아담하다. 예산군 신암면 신종리, 스페인풍의 기와를 얹은 여사울 성지의 성당은 예뻤다. 성당 맞은편에 야외 미사를 올릴 수 있는 풀밭과 제단이 있고, 제단 오른편 성모 마리아 상 옆으로 산책길이 나있다.

산책길에는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의 모습이 돌에 새겨져 있다. 박해의 시대를 오롯이 신앙으로 견뎌낸 초기 교회 신도들의 고단했던 삶을 되새겨보라는 뜻은 아닐지.

제단 왼쪽에 큼지막한 자연돌이 서 있고 그 돌에 이렇게 새겨져 있다. 내포천주교복음첫터.

1866년 병인박해 이전까지 조선 천주교회에서 교세가 가장 큰 지역은 충청도였다. 관변 자료인 ‘포도청등록’과 교회 사료인 ‘치명일기’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에 기록된 당시 신자 수는 3475명이다. 이 중 출신지가 분명한 신자 937명 가운데 396명이 충청도 신자다. 병인박해 시기 천주교 신자의 절반 가까이 되는 이들이 충청도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충청도가 초기 조선 천주교회의 신앙 중심지임을 웅변한다.

그때 조선 천주교회는 제4대 조선교구장 베르뇌 주교가 설정한 8개 사목구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 중 5개 사목구가 충청 지역이다.

배론성요셉신학당을 제외하고 1861년 충청도 교회 통계를 보면 상부 내포 홍주 지역(홍주 면천 당진 덕산 아산 온양 신창 예산 청양 대흥)에 387명, 하부 내포 서부 충청도 지역(태안 서산 해미 결성 보령 남포 비인 서천 홍산)에 170명의 신자가 있다,

또 충청도 동북부(단양 목천 연풍 영춘 전의 제천 직산 진천 천안 청안 청주 청풍 충주)지역에 249명, 공주와 인근(강경 금산 노성 보은 부여 연기 연산 영동 옥천 은진 임천 정산 진감 한산 황간)지역에는 신자 218명이 있었다.

베르뇌 주교가 작성한 이 통계를 보면 충청 땅 신자의 50% 이상이 내포에 살고 있으며 상부 내포 지방 신자 비율이 가장 높다. 충청도 교회의 중심지가 바로 내포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내포가 ‘천주교 신앙의 못자리’라고 불리는 이유다. 그 내포에서도 ‘복음 첫 터’가 여사울이니 내포가 신앙의 못자리가 되도록 흙을 깔고 복음의 씨앗을 뿌려진 그 첫 자리가 여사울이라는 것이다.

▲ 여사울 성지 성당. 스페인 풍의 기와를 얹은 성당이 예쁘다.
▲ 여사울 성지 성당. 스페인 풍의 기와를 얹은 성당이 예쁘다.

여사울 성지는 초기 교회를 이끌었던 아주 특별한 사람의 생가터에 조성됐다. 그가 살았던 집이 성지로 조성될 정도로 대단한 인물, 그는 ‘내포의 사도’로 불리는 이존창이다.

이존창은 여사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강세정은 ‘송담유록’에서 이존창의 선대의 신분이 노비였으나 면천되었고, 뛰어난 두뇌로 조선 천주교 창설자 중 한 명인 권철신의 강학에 참여하여 당당히 인정받았다고 적었다.

이존창은 권철신의 동생 권일신으로부터 교리를 배웠고 입교하게 된다. 여사울로 돌아온 그는 열성적으로 전교에 나선다. 여사울을 비롯해 홍성 덕산 이산 공주 등지 300가구를 신자로 이끌었다. 박해와 탄압 속에서 이와 같은 성과는 매우 경이적인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전라도 고산, 경상도 청송 예천 등 전국적으로 그의 발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이존창의 일상은 전교 그 자체였다. 그의 손길이 닿기만 하면 사람들의 가슴 속에 뜨거운 믿음이 샘솟았다. 그는 지치지 않은 열정의 소유자였다. 그가 진심과 성심으로 개종시킨 사람은 손꼽을 수 없을 정도다. 이들은 모두 내포 교회의 주축으로 성장하였다.

달레는 ‘한국천주교회사’에서 그를 두고 위대한 재능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특별한 재주를 지녔다고 말할 정도였다.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그는 윤유일과 황심과 김유산을 북경 밀사로 파견하는 데 관여하였고, 중국인 사제 주문모 신부를 영입하는 일을 설계하고 주도했다. 그는 이 같은 역량과 영향력으로 내포를 조선 천주교의 못자리로 만들었던 것이다.

▲ 성당 맞은편 야외 미사를 위한 제단
▲ 성당 맞은편 야외 미사를 위한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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