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신문=대전] 안순택 기자 = ‘게우사’라고, 1890년대에 쓰인 국문소설이 있다. 유흥에 푹 빠져 정신 못 차리는 사람을 당시에는 ‘왈자(曰者)’라고 했다. 왈자 김무숙을 따끔하게 혼을 내 새사람을 만드는 내용인데, 지금은 잊힌 판소리 ‘무숙이타령’을 소설로 쓴 작품으로 학계는 본다.
이 작품에는 판소리 초기 명창들의 이름과 장기가 소개돼있고, 각종 연희에 대한 정보가 풍부해 옛 공연문화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 ‘게우사’에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판소리 명창들의 장기를 적어놓은 부분에 ‘최석항의 내포제’가 소개돼 있는 것이다. ‘내포제’라니? 중고제 이전에 내포제가 있었다는 얘기인가?
‘내포제’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시조 창법 가운데 내포제가 있다. 시조라는 추정을 따른다면 최석항은 내포제 시조를 하듯이 소리를 했던 것일까? 아니라면 충청 지역 소리가 특히 인기가 높아 너도나도 그 소리를 따라했기에 따로 내포소리라고 묶어 표현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중고제, 동편제, 서편제 하듯이 판소리는 음악 특성에 따라 ‘제’로 구분하는 데 이 ‘제’가 붙은 게 ‘게우사’의 ‘내포제’가 가장 먼저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런 상상을 가능케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판소리가 내포 땅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조선창극사’는 최선달과 하한담을 판소리 최초의 명창으로 기록하고 있다. 광대들이 소리풀이라고 하는 노래를 하면서 선배 명창의 이름을 부르는 데 최선달과 하한담(하온담, 하언담)을 판소리의 시조로 부른다는 것이다. 최선달은 “결성의 최선달”이라고 했으니 홍성 사람이 분명하다.
그간 최선달과 ‘게우사’의 최석항이 동일인물일 것이라는 시각이 있기도 했지만 최선달은 결성에서 대대로 살아온 해주 최씨 가문, 본명은 최예운(崔禮雲)이라는 분으로 최근 확인됐다.
최선달의 후손인 최광순(崔光順)씨와 최양섭(崔良燮)씨가 1993년 제34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홍성 결성 농요 메김소리 연창자로 출전하는 과정에서 최선달이 최예운임이 밝혀졌다.
최선달은 양반출신 비가비 명창의 대표적인 인물로 소리를 잘해 조정으로부터 가선대부 벼슬을 제수받기도 했다. 석당산과 누에산 등 여러 곳을 다니며 공부한 끝에 득음했고, 평생을 판소리의 기틀을 닦는데 헌신했다고 전한다.
특히 최선달과 하한담 두 명창이 무당굿에서 부른 ‘춘향전’은 판소리 ‘춘향가’의 시초로 알려지고 있다. 하한담 명창 또한 천안 목천 출신으로 추정되고 있으니 충청이 판소리의 발아지이자 탄생지요, 고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 명창과 하 명창은 충청도의 유장한 가락과 말투로 노래했을 것이다. 소리꾼들은 이 충청도 가락과 말투를 따르려 무척 노력했을 것이다. 충청소리, 이것이 ‘내포소리’로 표현된 것은 아닐까.
김성옥과 함께 중고제 시조로 불리는 염계달 명창이 경기도 여주 사람임에도 충청도 사투리를 잘했다는 구전은 당시의 현상을 짐작하게 한다. 충청은 판소리의 고향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