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신문=대전] 안순택 기자 = 왜? 제주해녀는 호도로 시집왔을까.
대천항에서 뱃길로 50분, 섬의 생김새가 여우를 닮았다는 호도는 제주바다에서나 들을 법한 해녀의 숨비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여우섬에 제주해녀들이 온 것은 1960년대 중반이다. 호도의 최쌍신 선장은 1960년대 제주해녀들을 모집해 호도에서 물질을 하게 했다. 이 해녀 가운데 호도 남자와 결혼해 정착한 해녀는 29명인데 처음으로 결혼에 골인한 해녀가 최 선장의 아내인 현여생 씨다. 호도에 많은 제주해녀들이 정착하게 된 데는 아마 현 할머니의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제주해녀들은 벌이를 찾아 제주를 떠나 여러 섬에서 물질을 했다. 그러나 멀고 먼 충남 내포의 호도까지 제주해녀들이 원정을 와서 물질을 하다가 그렇게 많은 수가 정착했다는 것은 연구 대상이 되고도 남는다.
호도 인근 바다에는 해삼과 전복이 풍부하다. 벌이가 제법 쏠쏠한 풍부한 어장과 아름다운 풍광 게다가 인심 좋고 마음씨 고운 충청 사람들의 기질이 해녀들을 붙잡았으리라.
호도를 품고 있는 녹도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금주령’이 내려진 섬이다.
“라떼는 말야”하고 운을 떼도 좋을 섬이 녹도다. 조기가 가장 먼저 잡히는 곳이어서 녹도 조기는 임금님 수라상에 오를 정도로 유명했다. 내포바다에서 조기잡이의 메카로 ‘섬 속의 도시’를 이룬 적도 있었다.
조기가 많이 잡히던 시절에는 뱃사람들이 돈 자루를 메고 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유했었다. ‘배 띄워라 돈 실으러 가자’라는 뱃노래를 유행가처럼 부르던 시절, 포구엔 술집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주민들이 뜻을 모았다. 스스로 ‘금주령’을 내렸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섬 안에서 술을 팔지 못하도록 했다. 금주령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그만큼 주민의 자치수준이 높다는 뜻도 될 것이다. 애경사 등 술이 필요할 때는 대천에 나가 사온다.
생김새가 ‘고개는 서쪽, 뿔은 동쪽에 두고 드러누워 있는 사슴과 같이 생겼다’는 섬, 녹도의 포구에는 항일의병 전적비가 있다. 1907년 9월 8일 의병들이 바로 비가 세워진 포구에서 일본수비대를 격파한 승리의 기록이다.
장구를 닮았다는 장고도에는 200년 전부터 내려오는 여성들의 놀이가 있다. 매년 음력 4월 초, 아녀자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굴 등 어물채취 경합을 벌인다.
승부가 나면 한복으로 갈아입고 둥그렇게 앉아 점심을 먹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그런 다음 한 해 동안의 풍어를 기원하는 제를 지낸다.
옷을 갈아입을 돌방을 놀이 하루 전날 바닷가에 쌓는데 이 돌방을 ‘등바루’라고 하고 이 놀이를 ‘등바루 놀이’라고 부른다. ‘등바루 놀이’는 지난 1981년 제주에서 열린 제21회 전국민속대회에서 문공부장관상을 수상했다.
놀이의 연령 기준을 15세로 잡은 것으로 보아 어린 처녀들에게 해산물을 채취하는 기술을 습득시키고 나아가 어엿한 성인이 됐음을 인정하고 축하하는 성년식 행사로 보여진다.
길쌈이 굴따기로, 시기가 음력 8월이 음력 4월로 바뀌었을 뿐 한가위 전설과 똑 같다. 아주 먼 과거에서부터 여성들이 일하는 이 땅의 노동현장에서 여성들의 노고를 덜어주기 위해 등바루 놀이와 비슷한 형태의 놀이가 널리 행해졌던 것은 아닐지 추측해보는 것이다.
등바루 즉 돌방은 대멀항 부근에 실물 모형을 만들어 놓아 그 생김새를 엿볼 수 있다.
내포 바다의 섬에는 저마다 이야기가 있다. 역사, 전설, 민속, 독특한 고기잡이, 생활방식 등등 도시 사람들이 들으면 귀가 쫑긋할 이야기들이 넘친다.
이런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줄 방법은 없을까.
섬마다 박물관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박물관이라고해서 굳이 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섬의 이야기를 담은 조그만 초가집 박물관. 더 정감이 가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