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의 맏제자 수월이 겸손하고 자비로운 관음보살의 화신이라고 한다면 둘째 혜월은 ‘천진불(天眞佛)’이다. 강원의 강사스님들 앞에 죽비를 던져놓고는 이게 무슨 글자냐고 묻고는 강사들이 대답을 못하자, “땅이면 흙토(土)이고 그 위에 한 일(一)자를 얹으면 임금 왕(王)자 아닌가. 임금 왕자도 모르는 주제에 잘난 체들 하지 말게.”하고 깔깔거리는 천진한 어린아이 같았다.
경허가 내포의 사찰을 돌며 선(禪)바람을 일으키고 있을 때 스물을 갓 넘긴 청년 스님이 경허를 찾아왔다. 청년 스님은 덕숭산 정혜사에서 경허의 설법을 듣고 가슴에 벼락이 쳤다며 경허에게 물었다.
“관음보살이 북으로 향한 뜻이 무슨 뜻이옵니까?”
경허가 되받았다.
“그것 말고 또.”
청년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대신 주먹 하나를 높이 들었다. 경허가 말했다.
“들어와 앉아라.”
혜월은 그렇게 경허의 제자가 됐다. 그곳이 서산 개심사였다.
푸른 벚꽃이 피는 개심사는 봄철 벚꽃 필 때가 장관이지만 가보면 사시사철 언제나 아름답다. 이맘때면 졸음에 겨운 햇볕에 익어가는 단풍을 만나게 될 것이다. 개심사의 아름다움을 우리나라 절집 가운데 으뜸으로 치는 현을생 씨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 씨는 개심사의 여러 풍광 가운데서도 산신각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을 첫 손가락에 꼽는다.
개심사에서 혜월을 보는 까닭은 혜월을 꼭 닮은 건물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심검당(尋劍堂). 칼(劍)을 찾는(尋) 집(堂). 굽은 기둥, 둥글게 휜 문지방, 휘어 뻗은 창방 등 마치 목수가 장난치듯이 저리도 익살스럽게, 저리도 천연스럽게 만든 것은 칼을 찾으려면 마음이 처음 나온 자리, 하늘이 낸 마음의 처음 자리, 자연 그대로의 천연을 찾아가라는 가르침은 아닐 것인가.
수월이 북으로 갔으니 혜월은 남으로 갔다. 부산 선암사에 있을 때 헤월이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천하의 명검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났다. 헌병대장이 그 칼이 궁금해 혜월을 만나러 왔다.
“그 칼 말씀이로군요. 보여드리고 말구요. 저를 따라오시지요.”
혜월이 선선히 칼을 보여주겠다고 응낙을 하고 앞장을 서자 헌병대장은 천하의 명검을 드디어 보게 되었다는 기대감에 들뜬 마음으로 뒤를 따랐다.
섬돌 계단을 걸어 축대 위까지 올라갔는데 앞서 걷던 혜월이 갑자기 돌아서더니 그의 뺨을 후려쳤다. 무방비 상태에서 호되게 얻어맞은 헌병대장은 그대로 섬돌 아래로 비명을 지르며 굴러 떨어졌다.
졸지에 수모를 당한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벌떡 일어나 허리에 찬 칼을 빼들어 혜월을 베려고 했다. 그러나 먼저 혜월이 다가가 넘어진 헌병대장을 부축해 일으켜 세우면서 말했다.
“이것이 내가 갖고 있는 당신이 보고 싶어 하던 천하의 명검이오. 내가 당신을 때려 섬돌 아래로 떨어뜨린 손은 당신을 죽이는 칼이요, 부축하여 일으켜 세운 손은 당신을 살리는 칼이올시다.”
네 뺨을 때린 손은 살인도(殺人刀)요, 너를 부축해 일으켜 세운 손은 활인검(活人劍)이다. 펴면 손이요 쥐면 주먹이다. 같은 손이로되 마음먹기에 따라, 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살인도도 되고 활인검도 되는 이치. 그것이 어찌 손뿐이겠는가. 말도 글도 돈도 권세도….
두 개의 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 하나의 칼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 칼이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것은 곧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에 달린 것이다. 천진불 혜월은 그 위대한 교훈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